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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스타트업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만들어 푸는 당신에게

by DrKo83 2026.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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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데 왜 아무것도 안 된 것 같지?" — 이 질문, 해보신 적 있으세요?

하루 종일 뭔가를 했어요. 회의도 들어가고, 슬랙 메시지도 수십 개 주고받고, 문서도 만들었어요. 그런데 퇴근 무렵이 되면 이상하게 공허하죠. 분명 바빴는데, 진짜 중요한 게 진전된 느낌이 없어요.

이게 단순한 느낌이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가 가짜 문제를 만들어서 열심히 풀고 있었던 거거든요.

최근 프로덕트 뉴스레터 업계에서 꽤 화제가 된 글이 하나 있어요. Ali Abouelatta라는 프로덕트 전문가이자 뉴스레터 작가가 쓴 글인데, 핵심이 딱 하나예요.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만들어내서 그걸 풀고 있다." 이 통찰이 정말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 PM, 프리랜서들의 공감을 얻고 있더라구요.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한국의 현실에 맞게 풀어보려고 해요. 특히 스타트업, 1인 창업,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끝까지 읽어보시면 꽤 뼈를 맞는 내용이 있을 거예요.

파킨슨 법칙 — 일은 시간을 먹도록 설계되어 있다

먼저 파킨슨의 법칙부터 알고 넘어가야 해요.

1955년 영국의 행정학자 파킨슨(Cyril Northcote Parkinson)이 주창한 이 법칙은 한 줄로 요약돼요. "일은 주어진 시간만큼 늘어난다." 그가 영국 해군을 분석했더니, 전쟁이 끝나 군함이 67%, 장병이 31.5% 줄었는데 행정 인력은 오히려 78%나 늘어났어요. 일이 줄었는데 조직은 더 커진 거죠. 왜냐면 일이 줄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에요.

이게 100여 년 전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오늘날 우리의 업무 방식도 놀랍도록 비슷하게 작동해요.

Ali는 자신이 하루 8시간, 주 5일을 채울 만큼의 일을 항상 갖고 있었다고 해요. 더 많을 때는 있었어도 덜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요. 솔직히 저도 공감이 가는 말이에요. 어느 회사에서 일하든, 어느 프로젝트를 맡든, 백로그는 언제나 넘쳐나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 모든 게 중요한 일일까요?

"유저 0명인데 SOC2 컴플라이언스?" — 가짜 문제의 민낯

Ali가 솔로로 AI와 협업해서 Lazyweb이라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어요. 중요하고 명확한 문제들이 산더미인데도, 이상하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풀러 우회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가 어느 날 자신의 백로그를 살펴봤더니 이런 것들이 있었대요.

가격 정하기, 데이터베이스 이중화, SOC2 컴플라이언스, 팀 플랜 설계, 프리미엄 브랜드 미학 정의, 특정 개발 라이브러리 강의 완강하기, 에러 화면을 재미있게 만들기, 백엔드를 마이크로서비스로 쪼개기.

근데 이 시점에서 Lazyweb의 유저 수는 0명이었어요.

유저도 없는데 SOC2 컴플라이언스요? 팀원도 없는데 팀 플랜 설계요? 이게 웃긴 것 같지만, 실제로 많은 창업자들이 이런 상황에 놓이고 있어요. 심지어 이걸 '준비'라고 부르면서요.

CB Insight 분석에 따르면, 실패한 스타트업의 42%가 시장 수요가 없는 제품 또는 문제를 만드는 데 시간을 낭비한 것으로 나타났어요. 결국 진짜 문제를 풀지 못하고 가짜 문제에 에너지를 쏟은 거죠.

필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vs 아예 하지 말아야 할 일

여기서 Ali가 정말 날카로운 구분을 제시해요.

모든 업무가 다 중요할 필요는 없어요. 어떤 건 그냥 필요한 거예요. 앱에 로그인 기능을 만드는 건 필요하지만, 그 자체가 핵심 가치를 만들진 않아요. 이건 해야 할 일이에요.

반면, 유저가 17명인데 A/B 테스트와 피처 플래그 시스템을 세팅하는 건요? 이건 아예 존재하지 말아야 할 문제예요. 지금은 필요하지도 않고, 만들어봤자 핵심 가설 검증과는 아무 관련이 없거든요.

이 두 가지를 헷갈리면 안 돼요.

필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은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야 해요. 그리고 아예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일은 백로그에서 지워야 해요. 아예요. 나중에 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은 볼 필요도 없는 거예요.

대기업에서 가짜 문제가 생기는 두 가지 이유

개인 창업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대기업에서도 가짜 문제가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어요.

Ali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봐요.

첫 번째는 인센티브 구조예요. 승진이나 성과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비틀린 동기가 있어요. 팀 규모를 늘려서 더 많은 리소스를 확보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론 아무도 쓰지 않는 크로스팀 이니셔티브를 돌리고, '전략적으로 보이기 위한' 플랫폼 마이그레이션을 제안하는 식이에요. 이게 팀과 조직 전체에 피해를 줘도 자신에게는 이득이 되는 구조라면, 사람들은 가짜 문제를 계속 만들어내요.

두 번째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맡았을 때예요. 예를 들어 광고 성과 팀의 UI를 담당하는 PM인데, 정작 광고 채널 자체가 망가진 상황이라면요? 채널 문제는 내가 고칠 수 없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이 고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요. 랜딩 페이지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새로 정의한다든가, 컴포넌트 라이브러리를 정비한다든가. 덜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지만, 아무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일이에요.

망상적 문제 해결 — "대박 나면 어떡하지?"의 함정

이 부분은 특히 초기 스타트업이나 1인 창업자에게 강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예요.

"런칭 비디오가 바이럴 되고, 모두가 가입하고, 유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인프라가 버텨내지 못할 거야. 오늘 인프라를 강화해야 해."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이걸 Ali는 망상적 문제 해결이라고 불러요. 미래의 가상 성공을 지금의 현실 제약으로 바꿔버리는 거예요. 게임에서 세 수 앞을 계산하는 건 좋지만, 체스 판에 말이 올라가 있지도 않은데 세 수 앞을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이 패턴이 무서운 이유는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창업자 스스로도 이게 필요한 일이라고 믿게 돼요. 하지만 결국 이건 지금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무서운 일, 즉 가치를 만들고 고객이 그걸 인정하게 만드는 것으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이에요.

2025년 기준, 한국 스타트업 창업자의 64.8%와 투자자의 58.9%가 생태계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변화했다고 평가하는 상황이에요. 투자 혹한기를 넘어 빙하기라는 말이 나오는 시대에, 이런 망상적 문제 해결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는 더더욱 없어요.

왜 뇌는 가짜 문제로 도망치려 할까?

행동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이건 사실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우리 뇌는 높은 노력, 높은 불확실성 상황을 극도로 싫어해요. 첫 MCP 서버를 세우다 막혔을 때, 백엔드가 계속 크래시 나는데 원인을 모를 때, AI 에이전트가 한 시간 돌다가 아무런 해결책 없이 멈췄을 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백로그에 별의별 항목이 채워지기 시작해요.

이건 게으름이나 의지력 부족이 아니에요. 뇌가 살아남으려는 거예요. 불확실성과 실패 가능성이 높은 일에서 탈출해서, 내가 잘할 수 있고 결과가 예측 가능한 일을 하려는 거예요. 그게 비록 아무 가치가 없는 일일지라도요.

미루는 것도 같은 원리예요. 다음 해야 할 일이 명확하지 않거나 너무 무서울 때, 우리는 무한 스크롤, 남의 성공 사례 탐색, 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태스크를 처리하면서 진전되는 척 하게 돼요.

리셋의 힘 — 멈추는 것이 전진이다

Ali가 실천하는 방법이 단순하면서도 강력해요.

표류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때, 그걸 신호로 받아들이고 리셋해요. 산책, 요리, 저널링, 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는 시간. 때로는 하루 이틀이 필요하기도 해요.

그 후엔 백로그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막고 있는 단 하나의 문제에 집중해요. 그 하나를 작은 단위로 쪼개고, 하나씩 불확실성을 줄여가면서 다시 추진력을 찾는 거예요.

멈추는 게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근데 가짜 문제를 하루 종일 열심히 푸는 것보다, 진짜 문제를 향해 반나절이라도 제대로 나아가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당신의 백로그를 지금 당장 점검해보세요

오늘 이 글을 읽은 후 딱 한 가지만 해보시길 권해요. 지금 본인의 할 일 목록 또는 백로그를 열어서, 각 항목 앞에 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게 지금 꼭 필요한 일인가?" 그리고 "이게 핵심 가치 전달에 직접 연결되는 일인가?"

둘 다 아니라면, 그 항목은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최소한 아주 뒤로 미루세요. YC의 유명한 만트라처럼,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제품을 만들고 유저와 대화하는 거예요. 나머지는 대부분 노이즈일 가능성이 높아요.

바쁜 것과 중요한 것은 달라요. 그리고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이 결국 살아남아요.

마무리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만들어 푸는 건, 우리가 진짜 두려운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는 신호예요. 스타트업이든, 사이드 프로젝트든, 대기업 PM이든 마찬가지예요. 파킨슨의 법칙처럼 일은 언제나 우리의 시간을 가득 채우려 하지만, 그 일이 진짜 문제여야 의미가 있어요. 백로그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때, 미래의 가상 문제를 현재 우선순위로 올릴 때 — 바로 그 순간이 멈춰야 할 타이밍이에요. 리셋하고, 진짜 하나의 문제로 돌아오세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백로그에서 진짜 문제는 몇 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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