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SaaS 주가가 왜 이렇게 떨어지죠?"
2026년 초, 글로벌 주식 시장에서 SaaS 기업 주가가 눈에 띄게 흘러내렸습니다. 단순한 조정일까요, 아니면 구조 자체가 바뀌는 걸까요?
업계에서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SaaS 구독 모델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는 거죠. 실제로 세일즈포스, 아틀라시안, 허브스팟 같은 주요 SaaS 상장사들은 AI 기능을 도입했음에도 뚜렷한 성장 가속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끝나가는 걸까요? 아니면 '어떻게 돈을 버느냐'가 바뀌는 것일까요? 오늘은 이 질문을 제대로 파헤쳐 보려 합니다.
지난 20년간 SaaS가 '최고의 비즈니스'였던 이유
투자자들이 SaaS를 그토록 사랑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코드를 한 번 만들면 추가 비용 없이 무한 복제가 가능했고, 고객이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쉽게 떠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도 제품이 크게 낡지 않으니 계속 팔 수 있었죠.
한 마디로 '만들어 놓으면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습니다. 마진은 높고, 손익계산서는 단순하며, 성장은 예측 가능했습니다. 세일즈포스, 어도비, 줌 같은 기업들이 그 증거였고요.
글로벌 SaaS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2,662억 달러 규모이며, 2032년까지 1조 3,315억 달러로 연평균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숫자만 보면 여전히 대단한 시장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습니다.
AI가 SaaS의 세 기둥을 흔들고 있다
미국의 스타트업 투자자 요니 레흐트만(Yoni Rechtman)은 "AI가 소프트웨어 비즈니스의 세 가지 핵심 기둥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일까요?
첫째, 이제 소프트웨어에도 원가가 생겼습니다. AI 기능을 넣으면 추론(inference) 비용이 발생합니다. 예전에는 100명이 쓰든 10만 명이 쓰든 서버 비용 정도였지만, 이제는 AI를 많이 쓸수록 비용이 비례해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깔끔했던 마진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둘째, 제품 수명이 짧아졌습니다. AI 도구가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작년에 공들여 만든 기능이 올해는 이미 구식이 될 수 있습니다. '한 번 만들면 오래 판다'는 공식이 서서히 깨지고 있는 겁니다.
셋째, 전환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직원들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익혀야 했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AI 에이전트가 대신 사용하는 시대입니다. 도구를 바꿔도 에이전트가 금방 적응하니, 고객 입장에서 굳이 한 제품에 묶여 있을 이유가 없어진 거죠.
"SaaS는 죽었다"는 말, 오해입니다
많은 분들이 AI 때문에 소프트웨어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건 오해입니다.
레흐트만은 명확히 말합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는다고요. 문제는 추론 비용, 경쟁 심화, 그리고 상품화(commoditization)입니다. 소프트웨어 자체의 쓸모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곳에서 더 쉽게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차별화가 어려워지는 거라는 얘기죠.
실제로 사스트(SaaStr)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I 지출은 2025년 기준 약 6,4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으로, 이는 같은 해 SaaS 시장의 두 배에 달합니다. 소프트웨어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더 빠르게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독점적인 위치'를 유지하기가 훨씬 어려워지는 것이죠.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SaaS의 가격 모델도 완전히 바뀌고 있다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변화가 있습니다. 바로 과금 모델의 전환입니다.
지금까지 SaaS의 주력 모델은 '좌석당 과금(per seat)'이었습니다. 직원 수만큼 구독료를 내는 방식이죠. 그런데 만약 AI 에이전트 10개가 영업 사원 100명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더 이상 100개의 시트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10개면 충분하죠. 이게 바로 월가가 공포에 떨었던 계산입니다.
IDC는 2028년까지 소프트웨어 벤더의 70%가 사용자당 과금 모델에서 벗어나 가격 체계를 재편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앞으로는 사용량 기반 과금, 성과 기반 과금, 플랫폼 수수료 모델로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유리하지만, SaaS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 예측 자체가 훨씬 어려워지는 구조입니다.
살아남는 기업들의 세 가지 전략
그렇다면 이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버티컬 AI에 특화하는 전략입니다. 특정 산업에서 사람이 하던 고위험, 고책임 업무를 AI로 대체하는 방식입니다. 보험, 의료, 법무 같은 분야가 대표적이죠. 단순한 소프트웨어 구독료가 아니라, 사람 인건비와 경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계약 규모 자체가 커집니다. 실제로 국내 버티컬 SaaS 시장은 2030년까지 약 303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며, 연평균 성장률은 14.7%로 예측됩니다.
두 번째는 전진 배치(Forward Deployment) 전략입니다. 소프트웨어만 팔지 않고, 전문 인력을 고객사에 직접 파견해서 도입과 성과를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팔란티어(Palantir)가 대표 사례인데요, 이 회사는 직접 고객사에 엔지니어를 파견해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주면서 장기 계약을 확보했습니다. 2025년 기준 미국 내 상업 매출이 전년 대비 71% 증가하고, 기업가치는 12개월 동안 400%가량 상승했습니다. 복잡해 보이지만, 고객 이탈이 극히 낮고 계약 규모가 크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세 번째는 서비스 기업이 소프트웨어화하는 전략입니다. 기존 서비스 기업이 자체 AI 플랫폼을 개발해 사람 손을 줄이는 방향입니다. 마진이 낮은 서비스업에서 출발해, 소프트웨어로 구조를 바꾸면 수익성이 극적으로 개선됩니다. 물론 문화와 조직 모두를 바꿔야 하는 어려운 변신이지만,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큽니다.
한국 시장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인다
이 변화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SaaS 기반 보험, 금융, 법무 스타트업들이 단순 구독 모델에서 서비스 책임형 모델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특히 카카오페이, 토스, 뱅크샐러드 같은 핀테크 기업들이 보험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기존 보험사 전용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단순 기능 공급자가 아닌 '결과 보증자'로 포지셔닝을 바꾸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전진 배치 모델과 매우 유사한 흐름이죠.
NHN두레이는 금융권 전용 협업 솔루션으로 우리금융그룹, DB손해보험 등 20여 곳에 서비스를 공급하며 버티컬 특화 전략의 성공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범용 기능으로 승부하기보다, 특정 산업에서 압도적인 전문성을 쌓는 방향이 더 유효해진 겁니다.
규모냐 마진이냐, 이 시대의 핵심 선택
앞으로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두 갈래 길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는 더 복잡한 운영 구조를 감수하면서 큰 시장을 공략해, 절대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방향입니다. 마진은 낮아지지만, 규모는 커집니다.
다른 하나는 소수의 직원으로 높은 생산성을 만드는 부트스트랩 방식입니다. 투자 없이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대형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그에 맞는 전략을 취하는 것입니다. 불명확한 상태로 중간 어딘가에 걸쳐 있는 게 가장 위험한 선택이니까요.
마무리
SaaS의 황금기는 저물어 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의 황금기는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차이는 단 하나, 어떻게 돈을 버느냐입니다.
AI 기능이 결합된 SaaS 시장은 2032년까지 약 2,514억 달러로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소프트웨어 전체 파이는 커지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달라집니다. 단순히 좋은 코드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객의 결과에 책임지고,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관계와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를 팔지 말고, 소프트웨어로 가치를 만드세요. 그것이 다음 10년을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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