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잘 쓰면 살아남지 않을까요?" — 이 질문이 틀린 이유
요즘 PM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이거예요.
"ChatGPT로 리서치하고, Cursor로 프로토타입 만들고, Notion AI로 PRD 초안 뽑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실제로 지금 AI 툴을 잘 쓰는 PM은 확실히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2025년 기준으로 생성형 AI를 업무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내 기획자 비율이 아직 20~3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도 있으니까요. 아직까진 AI 네이티브로 일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희소한 셈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봐야 해요.
1~3년 뒤에 모두가 AI 툴을 똑같이 잘 쓰게 된다면, 그때 당신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면, 오늘 이 글을 꼭 끝까지 읽어보셨으면 해요.
툴 능숙도는 결국 평준화된다 — 스프레드시트의 역사가 증명해요
실리콘밸리 PM 커뮤니티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해온 Shreyas Doshi가 최근 이 주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어요.
그의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툴은 제품 성공의 결정적 요소가 된 적이 없고, AI 툴도 예외가 아니라고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 말이 맞아요. 과거에 엑셀을 잘 다루는 것이 뛰어난 재무 분석가의 조건이 된 적은 없어요. 어떤 툴이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준다는 정보가 퍼지는 순간, 그건 이미 업계 공통 지식이 되고 누구나 그 툴을 쓰기 시작하거든요.
지금 AI 툴도 똑같은 경로를 밟고 있어요. 지금은 아직 격차가 있지만, 이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좁혀질 거예요.
AI 툴 능숙도가 기본 요건이 되는 날이 오면, 경쟁의 무대는 완전히 바뀌어요. 그때부터 유일한 차이는 AI가 만들어준 것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느냐가 돼요.
진짜 무서운 경쟁은 "AI 못 쓰는 PM"이 아니라 "AI 잘 쓰는 PM들"끼리예요
많은 분들이 AI를 활용 못 하는 동료와의 경쟁을 걱정하세요. 근데 사실 더 중요한 방향을 봐야 해요.
모두가 AI 인사이트, AI 분석, AI 우선순위 제안을 동일하게 받아드는 환경이 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부터 같은 재료를 쥔 PM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경쟁에서 이기는 건 재료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재료로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는 사람이에요.
AI 출력물 위에 무엇을 더할 수 있는가. 그게 결국 PM의 진짜 가치예요.
AI가 아직 못 하는 것 — 프로덕트 센스의 5가지 구성요소
Shreyas는 좋은 제품 결정을 내리는 능력, 즉 '프로덕트 센스'를 다섯 가지로 분해했어요. 이게 바로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에요.
첫 번째는 깊은 공감 능력이에요.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는 맥락, 사용자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불편함을 감지하는 능력이에요. AI가 수천 개의 리뷰를 분석해줘도, 그 분석 너머에 있는 진짜 니즈를 읽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두 번째는 미래 시뮬레이션 역량이에요. 현재 도메인, 기술 트렌드, 경쟁 구도를 기반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그려내는 능력이에요.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사고에 가까워요.
세 번째는 전략적 사고예요. 우리 제품이 어떤 고객에게 어떤 이유로 선택받아야 하는지, 차별화 포인트를 명확히 정의하는 능력이에요. AI는 옵션을 줄 수 있지만, 어떤 포지셔닝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는 건 사람의 몫이에요.
네 번째는 탁월한 취향이에요. AI가 몇 가지 훌륭한 선택지를 제시했을 때, 지금 우리 사업 맥락에서 가장 맞는 것이 무엇인지 골라내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감각이에요.
다섯 번째는 창의적 실행력이에요. 모든 인사이트와 데이터가 주어진 상황에서, 경쟁자가 생각하지 못한 독창적인 방향을 떠올리는 능력이에요.
이 다섯 가지를 합친 것이 프로덕트 센스예요. 그리고 AI는 이 영역을 아직 대체하지 못하고 있어요.
"빠른 결정 vs 좋은 결정" — 속도 신화의 함정
이쯤에서 자주 나오는 반론이 있어요.
"AI 시대엔 속도가 전부 아닌가요? B+짜리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게 A+를 천천히 내리는 것보다 낫지 않나요?"
컨퍼런스 무대에서는 그럴싸하게 들리는 말이에요. 하지만 실제 프로덕트 현장에서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져요.
속도로 성공한 사례들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빠른 결정이 동시에 좋은 결정이었어요. 아마존 제프 베조스가 강조하는 "반대하고 헌신하라" 원칙도, 실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에 있어서만큼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해요. 속도 원칙은 가역적 결정에 적용되는 거예요.
B+짜리 결정을 빠르게 연속으로 내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 다음 결정도 조금씩 방향이 틀어지고, 어느 순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해 있게 돼요. 복리처럼 쌓이는 건 좋은 판단력이지, 빠른 판단력이 아닌 거예요.
프로덕트 센스는 7가지 경쟁 우위의 원천이다
Shreyas는 AI 시대의 경쟁 우위를 이렇게 정리했어요. 독점적 고품질 데이터, 깊은 고객·시장 인사이트, 최적화된 UX, 유통망과 번들링,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 규제 선점과 정부 관계, 충분한 자금력.
얼핏 보면 프로덕트 센스는 두 번째 항목 하나에만 관련된 것 같죠? 그런데 깊이 들여다보면 달라요.
어떤 데이터를 모아야 하는지 아는 것, 최적의 사용자 경험을 판단하는 것, 어떤 유통 전략이 효과적인지 아는 것, 규제 환경을 선제적으로 읽는 것. 이 모든 결정의 뿌리가 판단력이에요. 프로덕트 센스는 7가지 경쟁 우위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대부분을 만들어내는 원천이에요.
한국 PM들이 특히 놓치는 부분이 있어요
한국 IT 업계 특성상 우리는 실행력과 속도에 정말 능숙해요. 빠르게 프로토타입 만들고, QA 돌리고, 릴리즈하는 사이클에 최적화되어 있죠.
그런데 AI가 그 실행 부분을 점점 빠르게 대체하면서, 남는 건 방향성을 잡는 판단이에요. '무엇을 만들 것인가'와 '왜 그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능력이죠.
2026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면, AI 기반 서비스를 빠르게 찍어내는 팀들을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실제로 사용자에게 오래 선택받는 서비스는 정말 손에 꼽혀요.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제품 판단력이에요.
그렇다면 프로덕트 센스는 어떻게 키우나요?
솔직히 말하면, 프로덕트 센스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요. 강의 하나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에요.
다양한 사용자와 직접 대화하면서 말 뒤에 숨은 맥락을 읽는 연습이 필요해요. 출시된 제품들을 보면서 "왜 이 결정을 했을까?"를 끊임없이 묻는 습관도 중요하고요. 자신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추적하고 회고하는 루틴, 그리고 업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과 실패를 공부하는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AI가 더 뛰어난 분석을 줄수록, 그 분석을 더 잘 해석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인간의 판단력은 오히려 더 희소하고 더 가치 있어져요.
AI를 쓰면 쓸수록 좋은 PM과 평범한 PM의 차이는 더 뚜렷해지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거예요.
마무리
AI 툴을 잘 쓰는 건 이제 기본 역량이 될 거예요. 그 다음 경쟁은 AI가 만들어준 것 위에 무엇을 얹을 수 있느냐로 판가름 날 거예요.
프로덕트 센스는 AI 시대에 PM의 유일한 장기 경쟁력이에요. 공감 능력, 미래를 그리는 상상력, 전략적 판단, 탁월한 취향, 독창적 실행력. 이 다섯 가지를 의식적으로 갈고 닦는 사람만이 앞으로의 시장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거예요.
AI를 열심히 쓰되, AI가 줄 수 없는 것을 키우세요. 그게 진짜 커리어 전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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