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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소프트웨어

🏢 SAP는 왜 아직도 살아남았을까? AI 시대 레거시 ERP의 진짜 이유

by DrKo83 2026.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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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짜 2026년 화면 맞아요?"

SAP를 처음 접하면 누구나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색도 없고, 아이콘도 없고, 마우스보다 키보드가 더 편한 그 낯선 화면. 근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그룹, 포스코까지 한국 대기업들이 전부 이 시스템을 씁니다. 전 세계 180여 개국, 46만 개 이상의 기업이 여전히 SAP로 돌아가고 있고요.

AI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시대에, 왜 이 '오래된 소프트웨어'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미국 대표 VC인 a16z(앤드리센 호로위츠)가 최근 "왜 세상은 아직도 SAP로 돌아가는가"라는 아티클을 내놓으면서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했습니다. 그 안에 담긴 통찰이 단순히 SAP 이야기가 아니라, AI 시대 기업 소프트웨어의 미래 자체를 가리키고 있어서 오늘 정리해봤습니다.

SAP가 뭔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한 줄로 설명하면

SAP는 1972년 독일에서 설립된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핵심은 ERP, 즉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이에요. 재무, 회계, 자재관리, 생산계획, 인사, 물류, 판매까지 기업 운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비유하자면 회사의 '뇌'예요. 돈이 얼마 있는지, 창고에 재고가 얼마인지, 직원이 몇 명인지, 거래처 계약이 어떻게 되는지 전부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삼성전자도, 독일 폭스바겐도, 미국 보잉도 이걸 씁니다.

한국엔 1995년 삼성이 처음 도입했고, 지금은 국내 약 800여 개 대기업이 SAP를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ERP 시장 점유율 1위도 여전히 SAP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편한데도 계속 쓰는 거냐면요

a16z의 분석에서 가장 핵심 문장이 이겁니다.

"SAP는 단순한 앱이 아니라, 기업의 축적된 제도적 기억이다."

SAP 안에는 소프트웨어 기능만 들어있는 게 아니에요. 10년, 20년간 그 회사가 쌓아온 업무 방식, 결재 흐름, 권한 구조, 예외 처리 로직, 수백 개의 다른 시스템과의 연동 규칙이 전부 담겨 있습니다. 그것도 대부분 문서로 따로 정리돼 있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있는 형태로요.

이걸 바꾸려면 소프트웨어만 바꾸는 게 아니라 회사 운영 방식 전체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독일 대형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은 SAP 전환을 시도했다가 약 6,000억 원을 쏟아붓고 프로젝트를 포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SAP ECC에서 최신 버전 S/4HANA로 업그레이드하는 데만 평균 9,000억 원, 3년, 컨설턴트 50명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고요.

이쯤 되면 바꾸는 게 더 리스크라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불편해도 계속 씁니다.

"AI로 SAP 대체하면 되잖아요" — 이 생각이 왜 틀렸냐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하시더라구요. AI가 이렇게 발전했으니까 그냥 AI로 ERP 새로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합리적인 질문이에요.

그런데 a16z의 파트너 아니시 아차리아는 이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소프트웨어는 기업 비용의 약 8~12% 수준입니다. 이미 잘 작동하는 ERP를 AI로 새로 만드는 건 나머지 90%의 비용을 아끼는 데 써야 할 혁신 자원을 잘못된 곳에 쓰는 거라는 거죠.

더 중요한 건 데이터입니다. SAP 안에는 수십 년간 쌓인 거래 데이터, 재무 기록, 인사 이력이 담겨 있어요. 이걸 새 시스템으로 옮기다가 오류 하나만 나도 회사 전체 운영이 멈춥니다. 항공사, 제약사, 금융사 같은 규제 산업에서는 더욱 그렇구요.

결론은 이겁니다. AI가 SAP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SAP를 더 잘 쓸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이 현실적입니다.

AI의 진짜 역할 — 시스템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a16z가 제시한 가장 흥미로운 개념입니다. AI는 SAP라는 시스템을 투명하게, 즉 사용자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거라는 이야기예요.

지금 SAP를 쓰는 실무자들은 화면을 수십 번 전환하고, 필드를 하나하나 찾아 입력하고, 모르면 IT팀에 보고서 뽑아달라고 요청합니다. 그 과정에서 실수가 생기고, 학습 비용이 발생하고, 속도가 느려지죠.

AI가 붙으면 달라집니다. 슬랙이나 사이드바 AI에게 "지난 분기 구매 발주 내역 뽑아줘"라고 말하면, 알아서 SAP에서 데이터를 찾아오고, 연동 시스템에서 계약 조건을 확인하고, 정리된 결과를 보여줍니다. 사용자는 SAP 화면을 한 번도 열지 않아도 돼요.

이미 SAP도 이 흐름을 알고 자체 AI 에이전트 'Joule'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SAP의 계획에 따르면 현재 40여 개인 전문 AI 에이전트를 연말까지 400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재무, 인사, 공급망 등 각 비즈니스 프로세스에 특화된 에이전트들이 SAP 위에 얹히는 구조예요.

아모레퍼시픽도 최근 SAP ECC 환경에서 AI 코딩 도구를 도입해 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개발자들이 반복 작업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로직 구현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기업들 지금 어떤 상황인가요

국내 상황도 심상치 않습니다. SAP는 기존 ECC 버전에 대한 유지보수를 2027년(일부 버전은 2025년)에 종료하고, 클라우드 버전인 S/4HANA로 전환하도록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AWS 클라우드 기반의 SAP S/4HANA 도입 계약을 완료했고, 삼성·LG도 이미 S/4HANA를 쓰고 있습니다. 국내 기존 SAP 사용 기업 중 아직 구 버전을 쓰는 비중이 3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앞으로 2~5년 안에 대규모 전환이 일어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어요.

이 틈새를 공략하는 곳도 있습니다. 더존비즈온, 영림원소프트랩 같은 국내 ERP 기업들이 AI를 앞세워 SAP 고객을 빼오는 전략을 펼치고 있어요. 유지보수 비용이 비싸고, 국내 세법이나 업무 특성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하기 어렵다는 SAP의 약점을 파고드는 거죠.

'SaaSpocalypse' 라는 말이 생길 만큼, 지금 엔터프라이즈 SW 시장은 요동 중

요즘 업계에서 'SaaSpocalypse(사스포칼립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습니다. SaaS와 Apocalypse의 합성어예요. AI 에이전트가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게 되면, 사용자 수 기준으로 과금하던 기존 구독 모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에서 나온 말입니다.

세일즈포스는 2025년 고점 대비 약 18% 하락, 어도비는 최고가 대비 35% 하락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SAP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입니다. 왜냐면 SAP는 대체 자체가 어렵고, AI 에이전트가 결국 SAP 위에 얹히는 구조이기 때문이에요. 경쟁자가 SAP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SAP 위에 새로운 레이어를 만드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게 됩니다.

앞으로 5년, 기업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바뀔까

a16z의 예측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겁니다.

"레거시 시스템은 살아남는다. 그 위에 새로운 AI 레이어가 쌓인다."

SAP를 무너뜨릴 혁신적인 ERP를 만들겠다는 전략은 현실에서 계속 실패해왔습니다. SAP는 안 무너집니다. 대신 SAP 위에 얹히는 인터페이스, 자동화, 확장 레이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 시장이 됩니다. 그 레이어를 누가 장악하느냐가 앞으로 B2B 소프트웨어 시장의 핵심 경쟁이 됩니다.

실제로 PwC 조사에 따르면 이미 79%의 기업이 AI 에이전트를 일정 수준 도입했고, 88%는 관련 예산을 확보한 상태입니다. 전사 단위로 에이전트를 도입한 기업 중 66%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가시적 효과를 경험했다고 답했구요.

AI 에이전트의 다음 주 무대가 SAP입니다. 그 위에서 무엇을 얹을 것인가가 앞으로 몇 년간 가장 뜨거운 B2B 전쟁터가 될 겁니다.

마무리 — 레거시가 낡은 게 아니라, 역사입니다

SAP는 못생겼습니다. 비쌉니다.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SAP의 강점입니다.

수십 년간 수만 개의 기업이 쌓아온 업무 지식이 그 안에 녹아있어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업의 살아있는 기억입니다. AI가 온다고 그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AI는 그 기억을 더 잘 꺼내 쓸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됩니다.

레거시를 버리는 시대가 아니라, 레거시를 더 잘 활용하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SAP가 살아남은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이유가 거기에 있어요. 그리고 그 위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스타트업과 AI 기업들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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