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붙여보자"는 말이 제품을 죽인다
요즘 제품 개발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어차피 AI가 금방 만들어주잖아요, 일단 붙여봐요."
2025년 2월 테슬라 전 AI 디렉터 안드레이 카파시가 소개한 '바이브 코딩' 이후로 이 분위기가 더 강해졌죠. 자연어로 말하면 코드가 뚝딱 나오니까, 반나절이면 기능 하나가 완성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돼요.
만드는 비용이 내려간다고 해서, 그 기능을 유지하는 비용이 같이 내려가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만드는 건 쉬워졌는데 쌓이는 속도가 빨라졌으니까요. AI 시대에 기획자가 진짜 고민해야 할 건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만들어야 하는가'입니다.
기능은 한번 살아남으면 쉽게 죽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제품이 실패하는 이유를 '기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더 많이 만들고, 더 빠르게 추가하려고 합니다.
근데 현실은 반대예요.
제품은 기능이 없어서 망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기능을 넣다가 핵심을 잃어서 망하거나, 방향 없이 늘어난 기능들 때문에 품질이 무너져서 망합니다. 팀이 무엇을 위해 만드는지 잊어버려서 망하기도 하죠.
한번 기능을 추가하면, 그 기능은 이제 팀의 짐이 됩니다. 유지해야 하고, 테스트해야 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일부 사용자가 쓰기 시작하면 그게 워크플로우로 굳어버리고, 그 순간 삭제는 점점 어려워지죠.
실패한 기능은 오히려 다행이에요. 제거하고 배우면 끝이니까요. 진짜 무서운 건 딱 살아남을 만큼만 성공한 기능입니다.
제품이 뚱뚱해지는 건 나쁜 결정이 아니라 습관의 결과다
업계에서는 이걸 피처 블로트(Feature Bloat), 기능 비대화라고 부릅니다.
흥미로운 건, 이게 누군가의 나쁜 결정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이것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판단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제품이 거대한 기능 묘지가 됩니다.
고객사에서 "이 기능 없으면 계약 못 하겠어요" 하면 추가하고, 경쟁사가 붙이면 따라 붙이고, 내부 누군가의 아이디어가 좋아 보이면 넣어봅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쌓인 것들이 결국 제품을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버리죠.
추가 기준은 낮고, 유지 기준은 높은 이 비대칭이 제품을 망가뜨립니다. 기능을 추가할 때와 삭제할 때의 기준이 같아야 건강한 제품이 유지됩니다.
AI가 만들어주는 시대, 절제가 더 중요해진 이유
바이브 코딩이 확산되면서 2025년 기준으로 YC 배치에 있는 스타트업 중 상당수가 코드베이스의 대부분을 AI로 생성했다는 보고가 나올 정도입니다.
만드는 게 쉬워졌다는 건 사실이에요.
근데 바로 그 때문에 절제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예전에는 구현 비용이 자연스러운 필터 역할을 했어요. "이걸 만들려면 개발 3주 걸린다"는 말이 아이디어를 걸러냈으니까요. 그 필터가 사라진 지금은 사람이 직접 판단해야 합니다.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이 기능이 우리 제품 안에서 평생 존재할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 없이 만들어지는 기능들이 쌓이면, 제품은 방향을 잃습니다. 2026년 현재 SaaS 업계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어요. "기능을 파는 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제품의 가치이지, 기능 목록의 길이가 아닙니다.
기능 하나의 진짜 비용을 알고 계신가요?
기능 하나가 제품에 추가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코드 한 줄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용자 경험이 생기고, 새로운 실패 가능성이 생기고, 새로운 디자인 결정이 필요해집니다. 고객 지원 문의도 늘어나고, QA 범위도 늘어나요. 팀이 이해해야 하는 제품의 복잡도도 높아지죠.
기능의 비용은 개발이 끝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팀들이 기능의 비용을 개발 공수로만 계산하더라구요. 하지만 진짜 비용은 배포 이후에 발생합니다. 유지보수, 버그 수정, 예상치 못한 사용 패턴 대응, 고객 문의 처리, 다음 기능 개발 시 고려해야 할 의존성까지. 이 모든 것이 기능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발생해요.
기능 하나가 살아있다는 건, 팀이 그 기능과 영원히 함께 산다는 뜻입니다. 이걸 알고 기능을 추가하는 것과 모르고 추가하는 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기능 절제의 힘을 보여준 회사들: 애플, 노션, 토스
이걸 잘하는 대표적인 회사들이 있어요.
애플은 오래전부터 하지 않는 것의 목록으로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처음 아이폰에는 복사 붙여넣기조차 없었어요.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지만, 그 덕분에 핵심 경험은 깔끔했죠.
노션은 처음에는 메모 앱으로 시작했고, 점차 기능을 추가했지만 항상 데이터베이스처럼 생각하는 하나의 철학을 지켰습니다. 기능이 늘었어도 방향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토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금융 기능을 담고 있지만, 세 번 탭 이내에 해결한다는 UX 원칙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기능이 늘어도 사용자 경험은 유지됩니다.
공통점이 있어요. 이들은 기능을 추가할 때만큼이나 추가하지 않을 때의 기준도 명확합니다. 좋은 제품은 무엇을 담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담지 않았느냐로 완성됩니다.
PO가 실무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능 심사 질문 3가지
그렇다면 실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SaaS 플랫폼을 직접 기획하면서 쓰는 질문 세 가지를 공유할게요.
첫 번째는 이것입니다. "이 기능이 없으면 핵심 사용자가 떠나는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당장 만들 이유가 없습니다. 로드맵에는 넣되, 우선순위에서 미루는 게 맞아요.
두 번째입니다. "이 기능을 삭제해야 한다면 얼마나 어려울까?" 삭제가 어려울수록 진입 기준을 높여야 합니다. 일단 붙이면 못 뗀다면, 아예 붙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세 번째는 이겁니다. "이 기능이 우리 제품이 존재하는 이유와 연결되어 있는가?" 멋있어 보이지만 제품의 방향과 무관한 기능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제품을 복잡하게 만들 뿐이에요.
이 세 가지 질문에 자신 있게 예스라고 답할 수 있는 기능만이 제품 안에 들어올 자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놓치는 것: "일단 붙여보자"는 탐색이 아니라 결정이다
"일단 붙여봐요, 안 되면 빼면 되죠." 정말 많이 듣는 말인데요, 이 말이 가장 무서운 말입니다.
탐색과 실험은 격리된 환경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제한적으로 해야 합니다. 본 제품에 붙이는 순간, 그건 탐색이 아니라 결정이에요. 사용자 일부가 의존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그건 약속이 됩니다.
AI 도구 덕분에 프로토타이핑이 쉬워졌다는 건 맞습니다. 근데 프로토타입은 격리된 환경에서 테스트하는 것이고, 본 제품에 배포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결정이에요. 이 두 가지를 혼동하는 순간, 제품이 조용히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AI 시대 PO의 진짜 경쟁력은 "안 만드는 능력"이다
AI 시대에 빠르게 만드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 우위가 아닙니다. 누구나 빠르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제 진짜 경쟁 우위는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 결정하는 능력에서 나옵니다.
기능은 만드는 비용이 아니라, 존재하는 비용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 제품에 무언가를 더하기 전에, 그것이 평생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는지 먼저 물어보세요. 좋은 제품은 많은 것을 담은 제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담지 않은 제품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결국 기획자의 몫입니다.
마무리
AI 에이전트 시대, 만드는 건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쉽게 만든다는 건 쉽게 쌓인다는 뜻이기도 해요. 기능의 진짜 비용은 출시 이후부터 시작되고, 한번 추가된 기능은 팀이 영원히 책임져야 합니다. PO라면 기능 추가 요청 앞에서 가장 먼저 "정말 만들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 질문이 제품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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