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튼을 잘 만드는 사람"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요즘 UX나 서비스 기획 관련 글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어요. "화면을 설계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말이에요. 처음엔 그냥 유행처럼 들렸는데, 자료를 파고들수록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진짜 구조적인 변화라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가트너와 맥킨지는 2026년 핵심 기술 트렌드로 AI 에이전트를 지목했고, IBM은 2026년을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실제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는 해라고 공식 발표했어요. 그리고 SK AX가 발표한 에이전틱 AI 리포트에 따르면, 2028년에는 전체 기업 앱의 90%가 AI 에이전트를 통합하고, 2035년에는 에이전틱 AI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시장의 30%, 4,500억 달러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숫자만 봐도 이 변화가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느껴지시나요? 오늘은 이 흐름 속에서 UX 설계자와 기획자에게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UX(사용자 경험)가 뭔지부터 짚고 갈게요
UX는 앱이나 웹 서비스를 사용할 때 느끼는 모든 경험을 설계하는 분야예요. 어떤 버튼을 어디에 배치할지, 어떤 화면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텍스트가 얼마나 읽기 편한지를 고민하는 일이죠.
기획자, 디자이너, PO(프로덕트 오너)가 함께 작업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지난 20년 동안 UX의 중심은 항상 "화면"이었어요. 사용자가 직접 클릭하고, 스크롤하고, 입력하는 그 화면 말이에요.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이 공식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설계의 중심이 바뀌고 있는 거예요.
"행동"이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됐다
영국의 UX 전문가 MC 딘(MC Dean)은 최근 아티클에서 이렇게 표현했어요. "우리는 지난 20년을 사용자가 조작하는 것을 설계하면서 보냈는데, 이제는 시스템이 대신 행동하는 것을 설계해야 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요.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기능이 아니에요. 사용자 대신 목표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실행하는 존재예요. 예를 들어 "다음 주 일정 좀 정리해줘"라고 말하면, AI 에이전트는 캘린더를 분석하고, 중요도를 따지고, 일부 일정을 재조율하거나 사용자에게 확인을 요청합니다. 사람이 버튼을 누르는 대신, 시스템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거죠.
이때 UX 설계의 핵심 질문이 달라져요. "버튼을 어디 놓을까?" 대신 "이 시스템이 언제 스스로 행동하고, 언제 사용자에게 물어봐야 하는가?"가 중심 질문이 됩니다.
2026년 UI/UX 트렌드 리포트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나와요. AI가 사용자의 일상적 패턴과 현재 맥락을 결합해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시대, 디자인의 역할이 "고정된 화면의 설계"에서 "유연한 지능형 생태계의 관리"로 확장되고 있다고요.
한 줄로 요약하면, 픽셀이 아니라 행동 방식이 새로운 설계 대상이 된 겁니다.
이제 중요한 건 "위임 설계"다
기존 UX의 핵심 상호작용 패턴은 "명령"이었어요. 사용자가 버튼을 누르고, 시스템이 응답하는 구조. 하지만 에이전트 시대의 핵심 패턴은 "위임(Delegation)"입니다.
"이 방향으로 처리해줘. 단, 외부 미팅 일정은 건드리지 마. 결과가 이상하면 나한테 물어봐." 이런 방식으로 사용자가 목표와 제약 조건을 에이전트에게 전달하고, 에이전트가 알아서 실행하는 구조예요.
그렇다면 UX 설계자와 기획자는 뭘 설계해야 할까요? 바로 "위임의 방식"을 설계해야 해요. 어떻게 목표를 전달할 수 있는지, 에이전트가 어디까지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사용자가 언제 개입할 수 있는지를 디자인해야 하죠.
국내 UX 컨설팅 기업 위디엑스(WEDESIGNX)는 2026년 가장 큰 변화로 "인터페이스 중심(Interface-centric)에서 의도 중심(Intent-centric)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꼽았어요. 사용자가 화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도를 에이전트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핵심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위임 설계에서 실패하면, 아무리 훌륭한 AI 기술을 붙여도 사용자 경험이 무너진다는 것, 맥킨지 보고서에서도 명확히 지적하고 있어요. 명확한 워크플로우 재정의와 UX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도입된 AI 시스템은 기술 부채만 늘리고 프로젝트 실패로 이어진다고요.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흔히 하는 착각
"AI가 UI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니까 UX 설계자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이런 걱정을 자주 듣는데요, 현실은 반대입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설계 문제들이 쌓이고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AI 에이전트가 실수했을 때 사용자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에이전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솔직하게 표현해야 할까요? 사용자가 에이전트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어야 할까요?
이 모든 게 설계 문제예요. 화면 레이아웃이 아니라, "행동 방식"의 설계죠.
국내 프레임아웃의 김용섭 이사는 이 현상을 두고 "AI가 어쩔 수 없이 평균값을 제시한다"고 정확히 짚었어요. AI가 쏟아내는 평균적인 결과물 속에서, 안목 있는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AI 도구가 화면을 자동으로 만들더라도, "AI가 어떻게 행동해야 사용자가 신뢰할까"라는 설계 문제는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영역이에요.
에이전트 설계의 실제 루프를 알면 뭔가 달라진다
UX 전문가 MC 딘이 제안한 에이전트 지향 설계 루프(Agent-Oriented Design Loop)는 꽤 실용적인 개념이에요.
관찰 - 해석 - 결정 - 행동 - 반성 - 적응
예를 들어볼게요.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캘린더를 보고 6시간 연속 미팅이 있다는 걸 감지합니다(관찰). 이게 문제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스타일인지를 파악합니다(해석). 일정을 조율할지, 알림만 줄지를 정합니다(결정). 그리고 실행합니다(행동). 사용자가 그 결정을 수정하면 기록합니다(반성). 다음번엔 비슷한 상황에서 다르게 행동합니다(적응).
이 루프의 각 단계가 모두 설계 결정이에요. "관찰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까", "해석 기준은 누가 정하나", "잘못된 행동을 한 번 수정하면 바로 학습하는가, 패턴이 쌓여야 학습하는가" 이 모든 게 기획자와 PO가 정의해야 할 UX 설계 문제입니다.
구글이 이미 A2UI라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통해 대화 맥락에 맞춰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UI를 생성하는 기술을 선보였고, 스탠퍼드 연구에서는 이런 생성형 인터페이스가 기존 챗봇 대비 사용자 선호도를 최대 72%까지 높인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만큼 에이전트 행동 루프를 얼마나 잘 설계하느냐가 제품 경쟁력 자체가 되고 있는 거죠.
UX에서 AX로, 한국에서도 이미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UX가 AX(AI eXperience)로 확대되고 있다는 관점이 나오고 있어요. AX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요.
하나는 AI 기반으로 구현된 사용자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AI 에이전트 자체를 위한 경험 설계예요. AI 에이전트를 하나의 사용자로 보고, 그 에이전트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맥락을 설계하는 영역이 생겨난 거예요.
2026년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의 44%는 에이전트 AI로부터 주요한 변화를 기대하고 있고, 25%는 이미 변화가 진행 중이라고 응답했어요. 국내에서도 신한은행, 네이버 같은 대형 기업뿐 아니라 인슈어테크, 헬스테크 스타트업들이 에이전트 기반 서비스를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이 변화가 UX 설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기획자, PO, 개발자 모두 이 변화의 영향을 받아요. AI 에이전트가 서비스의 일부로 들어오는 순간, 그 에이전트의 행동 방식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제품의 품질을 결정하게 되거든요.
특히 PO와 기획자가 먼저 "에이전트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를 정의하지 않으면, 개발팀이 알아서 채워버리게 됩니다. 그건 제품의 철학을 포기하는 것과 같아요.
AI 결과물을 그냥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는 이유
UX 컬렉티브(UX Collective)에 기고한 디자이너 헤네시 파텔(Heenesh Patel)은 중요한 포인트를 짚었어요. AI 도구를 쓰면서 비판적 사고 능력이 무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건 UX 설계자뿐 아니라 서비스를 기획하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AI가 빠르게 아이디어를 생성해주면, 우리는 그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보다 수용하는 데 익숙해지기 쉽거든요.
국내 콘텐츠 디자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프롬프트를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보다, AI 결과물을 어떻게 맥락화하고 정제할지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요.
AI 시대에 설계자에게 필요한 건 단순히 AI 도구를 익히는 게 아니에요. AI가 제안한 방향이 사용자 의도에 진짜로 맞는지를 판단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그게 평균값 속에서 차별화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앞으로의 기획자에게 필요한 역량 3가지
지금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면, 앞으로 서비스 기획자와 PO에게 필요한 역량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첫째는 위임 모델 설계 능력이에요. 사용자가 에이전트에게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위임할 수 있는지를 정의하는 능력이에요. 단순히 "AI 기능 추가"가 아니라, 사용자의 신뢰와 제어감을 동시에 보장하는 설계가 필요해요.
둘째는 신뢰 설계 능력이에요. 에이전트가 실수했을 때 어떻게 사용자에게 알리고, 불확실할 때 어떻게 표현하며, 사용자가 에이전트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를 설계하는 능력이에요. 안전성과 투명성이 UX 기획의 업무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어요.
셋째는 비판적 판단력을 유지하는 능력이에요. AI가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환경에서, 그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이게 진짜 사용자 의도에 맞는가"를 계속 질문하는 능력이에요. 이것이 AI 시대에도 기획자가 가치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마무리
우리는 지금 20년 만에 가장 큰 UX 패러다임 전환을 목격하고 있어요. 화면을 잘 만드는 것에서,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설계하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화면이 없어지는 게 아니에요. 화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겼다는 거죠.
"이 에이전트가 어떻게 행동해야 사용자가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앞으로 모든 서비스 설계의 출발점이 될 거예요. 설계 능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설계해야 할 대상이 바뀌고 있는 겁니다.
이 흐름을 먼저 이해한 기획자와 PO가 다음 10년을 이끌게 될 거예요. 지금이 바로 그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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