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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조직관리

🎨 미움받을 용기, 크리에이티브 리더에게도 필요할까?

 

협업의 시대, 왜 결과물은 점점 밋밋해질까요?

요즘 직장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단어 중 하나가 '협업'이에요. 수평적 조직, 열린 소통, 심리적 안전감. 이 방향은 분명 맞는 방향이에요. 다양한 시각이 모이면 결과물이 더 풍부해지고, 아이디어도 더 자유롭게 나오니까요.

그런데 이 흐름이 극단으로 흘러가면 묘한 일이 생기더라고요. 누군가 불편해할 것 같으면 슬쩍 빼고, 클라이언트가 의아해할 것 같으면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고. 그렇게 다듬어진 결과물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지만, 아무도 기억하지도 않아요.

영국 브랜딩 에이전시 하우앤하우(How&How)의 설립자 캣 하우(Cat How)가 디자인 미디어 디자인위크(Design Week)에 쓴 칼럼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꺼냅니다. 제목은 "미움받을 용기: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 협업과 공감이 미덕으로 자리 잡은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진짜 리더십이 무엇인지 날카롭게 짚어주는 글이에요.

우리가 협업과 포기를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캣 하우는 이런 질문을 던져요. 우리가 친절함과 회피를 혼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협업과 포기를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방성을 판단력 부재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세 가지 질문이 꽤 찔리는 이유가 있어요. 기획자나 리더로 일하다 보면 언제부터인가 '최대한 마찰 없이' 일을 끝내는 것이 능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생기거든요. 모두가 동의하는 방향,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 결론. 그게 잘 하는 건지, 그냥 회피하는 건지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 분명 있잖아요.

실제로 2025년 Figma가 발표한 스테이트 오브 더 디자이너 보고서에 따르면, 업무 만족도가 높은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은 협업 도구를 잘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AI가 조직의 목표나 우선순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답한 비율이 27%에 불과했다는 점이에요. 기술보다 사람과 방향성이 여전히 결과를 좌우한다는 이야기죠.

기시미 이치로의 철학이 디자인 업계에 들어온 이유

이 칼럼의 배경에는 철학서 한 권이 있어요. 바로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킨 책, 기시미 이치로와 후미타케 고가가 쓴 미움받을 용기예요.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의 핵심 개념 중 하나가 바로 '과제의 분리'인데요.

내 과제는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그 결과를 상대방이 좋아하느냐 아니냐는 상대방의 과제. 이 둘을 섞으면 사람은 타인의 평가를 위해 일하게 되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캣 하우는 이 개념을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에 그대로 적용해요. 좋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디어가 가장 취약한 순간,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어색하고 불편한 그 초기 단계에서 그 아이디어를 지켜내는 것이 진짜 리더의 일이라는 거예요.

이걸 읽고 나서 저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리더가 평가를 두려워하는 순간, 팀 전체가 그 두려움을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빅 아이디어는 왜 처음에 항상 불편할까요?

좋은 아이디어는 처음엔 항상 불편해요. 비용이 많이 들어 보이고, 위험해 보이고,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느껴지죠. 실제로 나중에 사람들이 열광하게 된 캠페인들, 두고두고 기억되는 브랜드들은 대부분 초반에 '이게 맞아?'라는 반응을 받았던 것들이에요.

그런데 그 불편함의 단계를 버텨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회의가 거듭될수록 아이디어는 점점 작아져요. 클라이언트가 고개를 갸우뚱하면 살짝 다듬고, 팀 내에서 이견이 나오면 또 조금 빼고. 그렇게 모두가 동의하는 버전이 탄생해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결과물. 하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결과물이기도 해요.

크리에이티브 리더에게 필요한 용기는 바로 이 순간에 발휘돼요. 데이터도 없고, 선례도 없고, 당장 설득력 있는 논리도 부족한 그 아이디어를 일단 지켜보는 것.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해서 죽이지 않는 것. 그게 진짜 리더의 역할이에요.

AI 시대일수록, 판단하는 사람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영국 디자인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2025년 디자인 트렌드를 분석한 여러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어요.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적 연결을 만드는 작업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에요.

누가 봐도 괜찮은 결과물은 이제 AI도 만들 수 있어요. 실제로 AI 텍스트 입력만으로 최종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면서, 글쓰기 능력과 명확한 아이디어 표현이 디자인의 핵심 역량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요.

하지만 "이게 맞다"고 버텨내는 사람, "조금 더 가보자"고 팀을 이끄는 사람은 여전히 인간이어야 해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할수록 오히려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의 존재가 더 도드라지는 이유예요.

한국 UX/UI 업계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어요. 협업 툴이 발달하고, 리뷰 사이클이 짧아지고, 이해관계자가 늘어날수록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의 부재가 오히려 더 도드라진다는 것이죠.

미움받을 용기는 독불장군과 전혀 달라요

혹시 이 이야기가 고집 있는 리더를 옹호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캣 하우는 명확히 선을 그어요. 미움받을 용기는 권위주의나 자아도취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요.

좋은 크리에이티브 리더는 협업을 없애는 게 아니라 채널링해요. 아이디어는 어디서든 올 수 있도록 열어두되, 그 아이디어가 어디에 착지할지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지는 거예요. 넓게 듣되 좁게 결정하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팀원의 의견도 듣고, 클라이언트의 피드백도 수용하되, 최종적으로 우리가 만들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판단이 잠시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 그게 진짜 리더예요.

이런 태도는 팀에도 오히려 심리적 안전감을 줘요. 리더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팀은 더 혼란스럽거든요. 명확한 방향이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안에서 더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리더십의 외로움에 대하여

캣 하우는 한 가지 솔직한 이야기를 덧붙여요. 이런 결정들은 종종 외롭다고요. 팀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고, 클라이언트를 설득하지 못할 때도 있고, 선례도 없는 방향을 혼자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다고요.

이 외로움은 리더십의 비용이에요. 그리고 이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사람만이 진짜 의미 있는 작업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미움받을 용기에서 아들러가 이야기하는 자유의 개념도 비슷해요. 자유는 타인의 평가로부터 독립하는 것. 동시에, 그 자유는 책임을 수반해요.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건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는 의미예요.

크리에이티브 리더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모두에게 좋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건 팀을 무시한다는 게 아니에요. 진짜 좋은 작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판단을 내리겠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캣 하우의 칼럼은 구체적인 방법론보다 태도에 집중해요. 결국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에 필요한 것은 기술보다 용기라는 거예요.

협업은 작업을 풍요롭게 해요. 하지만 작업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용기예요.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눈, 아직 검증되지 않았더라도 지켜내는 배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 이 셋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기억하는 작업이 나와요.

2026년 D&AD 어워드 심사위원장이기도 한 캣 하우는 글의 끝에서 이렇게 말해요. 크리에이티브 리더십이 더 크거나 더 지배적일 필요는 없다고요. 단지 더 용감해야 한다고요. 이 한 줄을 읽고, 오늘 내가 미뤄두고 있던 결정이 무엇인지 한번쯤 돌아보게 됐어요.

마무리

미움받을 용기는 나쁜 리더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진짜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잠시 불편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협업과 공감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방향을 정하고, 지키고, 책임지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좋은 작업이 세상에 나와요. 오늘 당신이 리더라면, 아직 살아있는 불편한 아이디어 하나를 조금 더 오래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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