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 에세이가 해외에서 화제가 됐을까
얼마 전 해외 뉴스레터를 읽다가 한 글에서 꽤 오랫동안 스크롤을 멈추게 됐어요. 페이스북 전 부사장이자 앤시스트리닷컴(Ancestry.com) 최고경영자 뎁 리우(Deb Liu)가 자신의 50번째 생일에 쓴 에세이였는데요. 제목은 "50년을 살며 배운 50가지"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자기계발서 요약본 같은 느낌으로 훑으려 했어요. 그런데 읽다 보니 중간중간에 멈추게 되더라구요. 줄을 긋다 보니 반쯤 줄투성이가 됐고요. 커리어 10년 넘게 스타트업과 IT 업계에서 일해온 입장에서, 이 글이 단순한 리스트가 아니라 진짜 삶의 압축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뎁 리우의 원문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한국 직장인의 현실과 함께 풀어보려고 합니다.
"성공의 기준을 남이 먼저 정의하게 두지 마라" — 정체성의 함정
뎁 리우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이겁니다. 자기만의 미션을 먼저 정의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최적화하게 된다고요.
읽으면서 뜨끔했어요. 대학 입시부터 취업, 연봉 협상, 승진 심사.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지금 누구의 레이스를 뛰고 있는 건가"라는 질문이 불쑥 찾아오죠. 2025년 트렌드모니터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업무 만족도가 49.4%에 그쳤는데요. 절반도 안 되는 직장인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뎁 리우는 개인 미션 선언문을 직접 써볼 것을 권합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가 가장 활기차게 일하는 순간은 언제인가"를 종이에 적는 것만으로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요. 저도 실제로 해봤는데, 쓰다 보니 스스로도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라구요.
방향이 없으면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어딘가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뎁 리우가 50년 살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이었어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조용히 만들어간다" — 환경의 힘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건 이 문장이었어요. 누구와 시간을 보내느냐가 습관, 사고방식, 삶의 결정까지 바꾼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직 심리학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있어요. 가장 가까이 어울리는 다섯 명의 평균이 자신을 닮아간다는 이론은 이제 꽤 널리 알려져 있죠. 뎁 리우는 여기에 더해 주변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꼭 대단한 사람을 곁에 두라는 게 아니에요. 나를 성장하게 하고, 솔직하게 해주고, 더 나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예요.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이게 정말 실감 납니다. 조직 문화가 개인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혹은 반대로 개인이 조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가까이서 볼 수 있거든요. 그녀의 말처럼, 토양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씨앗도 뿌리를 내리기 어렵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한번 조용히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커리어를 제품처럼 기획하는 사람이 앞서간다
뎁 리우가 프로덕트 매니저 출신이어서인지, 커리어 조언도 제품 기획자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커리어를 제품처럼 기획하라." 제품에 로드맵이 있고, 목표 사용자가 있고, 우선순위가 있듯, 자신의 커리어도 그렇게 다뤄야 한다는 거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매일 주어진 업무는 열심히 하는데, 1년 후 내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싶은지, 3년 후 어떤 자리에 있고 싶은지를 생각해본 사람은 생각보다 적거든요. 뎁 리우는 이를 "실행은 좋아지지만 학습은 줄어드는 함정"이라고 표현하는데, 한 역할에 오래 있을수록 익숙해지는 반면 새로운 배움은 점점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2024년 글로벌 직원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67%가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가 이직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어요. 연봉만큼이나 성장의 기회가 직장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됐다는 거죠.
그래서 그녀가 제안하는 건 현재 역할 밖을 바라보는 시선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일은 커리어의 한 챕터일 뿐이라는 관점이에요. 지금 맡은 역할이 전부가 아니라, 다음 단계를 위한 학습 과정이라는 시각으로 일할 때 훨씬 에너지가 살아나더라구요.
좋은 리더의 조건은 "명확함"이었다
뎁 리우가 리더십에 대해 가장 강조한 것 중 하나가 극도의 명확함이었어요. 좋은 리더는 모호함을 없애는 사람이라고요.
실제 조직에서도 종종 보입니다. 리더가 방향을 애매하게 제시하면, 팀원들은 그 불확실성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해요. 결국 결과물도 제각각이 되죠. "명확한 거절이 모호한 승낙보다 낫다"는 그녀의 말은 처음엔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팀 전체에 결국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관리직이 되는 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관리는 배워야 하는 별도의 기술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어요. 뛰어난 실무자가 자동으로 좋은 관리자가 되지 않는다는 건 많은 조직이 이미 경험한 현실이기도 하죠. 신임 팀장이 역할 전환에서 어려움을 겪는 비율이 70%를 넘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입니다.
리더십은 직위가 아니라 기술입니다. 그리고 기술은 배울 수 있어요.
"인상적인 사람"보다 "인상을 심는 사람"이 되는 법
소통과 영향력에 관한 부분에서 뎁 리우는 이렇게 말합니다. "영향력의 핵심은 말이 아니라 연결이다." 옳은 말을 하는 것보다 공통점을 찾는 것이 훨씬 강력하다는 거죠.
또 이런 문장도 있었어요. 인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과 인상을 심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고. 가장 기억에 남는 리더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고요. 이게 사실 쉬운 것 같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바쁘고 압박이 많을 때일수록 우리는 상대를 설득하려는 모드로 들어가거든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채용 면접 자리를 떠올렸어요. 지원자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조직을 각인시키는 자리이기도 하죠. 내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상대방이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멘토는 조언하고, 스폰서는 없는 자리에서 내 이름을 꺼낸다
뎁 리우의 글에서 가장 실용적인 인사이트를 꼽으라면 저는 이 부분을 고를 것 같아요. 멘토와 스폰서의 차이입니다.
멘토는 내가 찾아가서 조언을 듣는 사람이에요. 반면 스폰서는 내가 없는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내 이름을 꺼내주는 사람입니다. 좋은 기회, 중요한 프로젝트, 핵심 자리에 나를 추천해주는 역할이죠. 커리어에서 큰 도약을 이룬 사람 뒤에는 멘토도 있었지만, 반드시 스폰서도 있었다고 그녀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런 말도 해요. 언젠가는 당신이 누군가의 스폰서가 되어야 한다고.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준 것처럼, 나도 그 지혜와 기회를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거죠. 받은 것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커리어 생태계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가 조용하지만 깊게 울렸습니다.
지금 내 주변에 멘토는 있나요?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스폰서가 되고 있나요?
"바쁨을 발전으로 착각하지 마라" — 후반부 교훈들
후반부에 나오는 교훈들은 삶 전체를 다룹니다. 그중 두 가지가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첫째는 "움직임을 진전으로 착각하지 마라"는 말이에요. 바쁨이 성과의 증거가 되는 조직 문화에서 특히 경계해야 할 함정입니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아니오를 말하는 기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둘째는 마지막 50번째 교훈, "당신은 여전히 성장하는 중이다, 나이와 관계없이"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든 준비 과정이었고, 지금 이 순간이 내일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말. 읽으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충분히 잘 살아왔다는 말이자,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해서요.
마무리 —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것들
뎁 리우의 50가지 교훈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 같아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의식적으로, 연결하며, 성장하라. 50년에 걸쳐 배운 것들이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을 스스로 먼저 정의하고, 커리어를 제품처럼 기획하고, 바쁨 속에서도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것. 오늘 이 글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스크롤이 멈췄다면, 아마 당신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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