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가 PM을 대체한다"는 말,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어요
요즘 IT 업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AI 때문에 PM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닌가요?"
챗GPT,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가 기획 문서, 요구사항 정의서, 심지어 백로그 정리까지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솔직히 불안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저도 처음 이 논쟁을 접했을 때 꽤 당혹스러웠거든요.
그런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출신 프로덕트 전략가 이타마르 길라드(Itamar Gilad)가 최근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AI 시대 PM의 미래는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는 건데요. 오늘은 이 내용을 기반으로 한국 현실에 맞게 풀어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I가 PM 전체를 대체하는 게 아니에요. 특정 유형의 PM이 위험하고, 특정 유형이 더 강해지는 구조입니다.
PM이 뭔지 잠깐 짚고 갈게요
프로덕트 매니저(PM)는 제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고, 고객의 목소리를 제품에 녹여내고, 개발자·디자이너·마케터를 연결하는 역할이에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프로덕트 매니저(Product Manager)는 제품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이고, 프로덕트 오너(Product Owner)는 그 방향을 실행 가능한 작업으로 쪼개는 사람이에요. 한국 기업, 특히 스타트업이나 중소 IT 회사에서는 이 두 역할을 한 명이 동시에 맡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한국 채용 시장 데이터를 보면 변화가 이미 시작됐어요. 2026년 기준으로 서비스 기획자와 UI/UX 디자이너 채용이 4년 만에 70% 이상 줄었고, 기획 직군 주니어 채용은 70% 가까이 급감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단순하게 "화면을 그리거나" "문서를 번역하는" 역할이 빠르게 줄어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떤 PM이 살아남을까요?
유형 1: AI PM, 기술을 제품으로 다루는 사람
첫 번째 유형은 AI 자체를 제품으로 다루는 PM입니다. LLM(대규모 언어 모델), RAG(검색 증강 생성), 파인튜닝, 이밸(evals, 성능 평가) 같은 기술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실제로 AI 관련 PM 채용 공고는 2023년 대비 2025년 기준 약 465%나 늘어났습니다. 7개 공고 중 1개꼴로 AI 전문 PM을 요구하는 수준이에요. 링크드인 코리아 분석에서도 AI 역량을 명시한 국내 채용 공고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추세가 확인됩니다.
그런데 길라드는 중요한 말을 덧붙입니다. "이 유형이 모든 PM의 표준이 되진 않는다"고요. 보안 PM이나 핀테크 PM처럼, AI PM도 하나의 전문 분야가 될 뿐이에요. 시장과 사용자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먼저이고, AI 기술 이해는 그 위에 얹히는 레이어라는 거예요.
즉, AI 기술만 아는 PM보다 특정 도메인을 깊이 알면서 AI를 활용하는 PM이 훨씬 강합니다.
유형 2: 개발자형 PM, 코딩 에이전트를 업무 도구로 쓰는 사람
두 번째 유형은 꼭 코드를 직접 짜지 않아도, 개발 환경처럼 일하는 PM입니다.
클로드 코드(Claude Code), 코덱스(Codex), 커서(Cursor) 같은 코딩 에이전트를 업무에 적극 활용하는 거예요. 이런 도구들은 세션 간 맥락을 기억하고, 여러 파일에서 정보를 찾아오고, 서브 에이전트를 독립적으로 실행하는 데 탁월합니다.
길라드는 코딩을 못 해도 이런 도구를 써야 한다고 권장합니다. 현재는 정보 작업자를 위한 전용 환경이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과도기적으로 이 도구들을 쓰는 것 자체가 실력이 됩니다.
단, 주의해야 할 함정이 하나 있어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자연어로 코드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건 아이디어 검증에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그 프로토타입을 요구사항 문서 대신 팀에게 던져버리면 역효과가 납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고정시켜버려서, 팀과의 열린 논의를 막고 개발 방향을 좁혀버리는 거예요.
도구를 잘 쓰는 PM과 도구에 의존하는 PM의 차이가 여기서 납니다.
유형 3: No PM, "이 직무가 사라진다"는 주장의 진짜 의미
세 번째 유형은 아예 PM 자체가 없어도 된다는 주장인데요. 실제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예요.
하나는 PM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창업자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X는 죽었다" 식의 자극적인 메시지로 주목을 끌려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진짜로 AI가 대체할 가능성이 높은 서브롤은 분명히 있습니다. 바로 딜리버리 PO, 즉 순수 실행형 프로덕트 오너예요. 다른 사람이 정한 로드맵을 받아서 백로그, 요구사항 문서, 유저 스토리를 정리하는 역할입니다.
한국 채용 시장에서도 이미 신호가 보입니다. 2025년 딜로이트 글로벌 인적자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78%가 AI 기술을 도입했지만 실제 조직 내 활용도가 높다고 답한 기업은 31%에 불과했어요. 기술은 빠르게 들어오는데 조직의 흡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그 흡수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살아남습니다.
1980년대 CAD 소프트웨어가 도면 작성자 대부분을 실직시킨 것처럼, AI는 이미 실행 번역 업무를 빠르고 저렴하게 처리할 수 있어요. PM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실행 번역만 하는 PO 역할이 먼저 줄어드는 겁니다.
유형 4: AI 임파워드 PM,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유형
네 번째 유형이 길라드가 가장 강조하는 미래형 PM입니다. AI를 무기로 회사 전체 기능을 개선하는 PM이에요.
지금까지 PM은 주로 제품 개발 영역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형은 다릅니다. 제품 기획, 리서치, 데이터 분석, 이해관계자 소통, 전략 수립 같은 모든 기능에 AI를 연결해서 회사 전체의 운영 방식을 업그레이드합니다.
이건 코드를 작성하는 개발형 PM과 다릅니다. 기술이 아닌 조직의 필요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훨씬 넓은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전통적인 기업들은 제품 배포, 시장 출시, 운영에만 집중하고 리서치, 실험, 학습 루프 같은 기능은 소홀히 합니다. AI 임파워드 PM은 나머지 기능들에도 AI를 연결해서 회사 전체의 역량을 키웁니다. 한 제품이 아니라 조직 자체를 업그레이드하는 거예요.
2026년 국내 기업 중 42%가 스킬 기반 채용 요소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는데요. 이 흐름에서 가장 강력하게 평가받는 사람이 바로 이 유형입니다. 특정 기술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그 기술로 조직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귀해지는 거예요.
AI가 PM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가
한국 PM 시장의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됩니다.
2025년 기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86.7%가 이미 인사 업무에 AI를 활용하고 있어요. 원티드랩 서베이에서도 기업들이 4~7년차 중견 경력직과 AI 활용 역량을 갖춘 인재를 중심으로 채용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어요. 관리만 하는 사람은 줄고, 판단하고 연결하는 사람은 더 필요해지는 구조라는 겁니다. 실제로 중간관리자 채용 공고가 2022년 정점 이후 2025년까지 약 42% 감소했다는 데이터도 나와 있어요.
많은 PM들이 이 변화 앞에서 기술적 격차를 느낍니다. LLM, RAG, 벡터 데이터베이스 같은 용어 앞에서 멈춰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전부 알아야 할 기술이 아닙니다. 도메인을 깊이 알고, AI를 그 위에 얹는 사람이 더 강한 PM이 됩니다.
나는 어떤 PM이 되어야 할까요
4가지 유형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방향성이 중요해요.
"AI 기술을 배우면 살아남는다"는 두려움 기반 접근보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어떤 문제를 AI로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기회 기반 접근이 훨씬 강합니다.
저는 이 분석을 읽으면서 4번 유형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봤습니다. 기술을 아는 것보다 기술로 뭘 할지 아는 사람이 더 귀하거든요. AI 시대에도 결국 시장을 이해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맥락을 읽는 능력이 PM의 핵심입니다.
길라드의 말처럼,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할 건 기술이 아니라 조직의 필요입니다.
마무리
AI가 PM을 대체한다는 말은 반만 맞습니다. 실행 번역만 하는 역할은 점점 AI로 대체되겠지만, 문제를 정의하고 방향을 잡고 조직 전체에 AI를 연결하는 PM은 오히려 더 귀해집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번역에 가깝다면 업스트림, 즉 더 윗단계로 올라갈 때입니다. "어떻게 만들지"보다 "무엇을 왜 만들지"를 정의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오늘 이 글을 저장해두고, 내가 어느 유형에 가까운지 한번 점검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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