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숫자만 보던 마케터의 고백
마케팅 커리어 초반, 저는 숫자가 전부라고 믿었어요.
정확한 파라미터만 설정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당시 옴니콤의 정밀 마케팅 그룹 컨설팅 부서에서 일하면서, 주변엔 뛰어난 기술 전문가들이 가득했어요. 그들은 단순한 캠페인 매니저가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하는 진짜 전문가들이었거든요.
그에 비해 브랜드 마케터들은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어요. 크리에이티브 브리프는 구체성이 떨어졌고, 비즈니스 임팩트는 제대로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캠페인은 결과보다 미적 요소를 우선시했고, 성과 측정은 나중에 생각하거나 아예 안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성과 마케팅이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굳게 믿었죠.
똑똑한 사람들이 만든 똑똑한 숫자의 함정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면 거의 항상 옳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거의 항상 틀리다."
제 옛 스승이셨던 피란 키담비 박사님의 말씀이에요.
저는 정밀 마케팅의 방법론만 믿은 게 아니라, 그걸 하는 사람들을 믿었어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었죠.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라면 그 원리까지 타당하다고 착각하기 쉬워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일으킨 합성 CDO도 천재들이 설계한 금융상품이었잖아요. 복잡한 수학 모델과 AAA 등급을 받았지만,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죠.
마케팅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간과한 건 지나친 단순화와 과신이었어요. ROAS를 단순하게 보고하고, 마지막 터치 어트리뷰션에만 의존하며, 과학적으로 보이는 대시보드가 실제로는 비즈니스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걸 몰랐죠.
데이터 분석가 벤 스탠실의 표현대로, 우리는 "숫자가 붙은 제안"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어요. 두 팀이 경쟁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깔끔한 차트와 예측 모델을 가진 쪽이 거의 항상 이기거든요. 설령 그 모델의 가정이 틀렸더라도, 숫자가 실제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담지 못하더라도요.
정밀함은 도구일 뿐, 전략이 아니다
마케팅 전문가 넬슨 엘리엇의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정말 세분화하면 규모를 잃게 된다."
바로 그 역설이었어요. 우리는 점점 더 작은 원 안으로 최적화해 들어갔죠.
수익률은 좋아 보였어요. 신규 고객 확보 비용은 안정적이었고, 대시보드는 깔끔했어요. 하지만 성장은 둔화됐죠. 우리는 수요를 포착하고 있었지만, 그 양동이는 곧 바닥이 났어요.
실제로 글로벌 디지털 광고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7,4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지만, 광고주들의 평균 광고 효율은 전년 대비 15~20% 하락했다는 보고가 있어요. 성과 마케팅에만 집중한 기업들이 점점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신규 고객 유입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 거죠.
특히 메타와 구글의 광고 단가는 2023년부터 2024년 사이 평균 30% 이상 상승했어요. 같은 예산으로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건데, 많은 기업들이 효율의 벽에 부딪힌 거예요.
넬슨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했어요. "성과 마케팅에서 과도한 최적화는 종종 잘못된 문제를 해결한다. 효율성을 개선하면서도 정작 올바른 목표를 향하고 있는지 묻지 않게 된다."
당시 우리는 반사실적 사고나 증분 효과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 않았어요. 테스트 마켓을 비교하지도 않았고, 매칭 마켓 실험도 거의 안 했죠. 그저 어트리뷰션 윈도우를 신뢰하고 깔끔한 성과 차트에 환호했을 뿐이에요.
눈을 뜨게 해준 책과 사람들
전환점은 바이런 샤프의 "브랜드는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읽으면서 찾아왔어요.
이 책은 제가 타겟팅과 성장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걸 뒤집었어요. 샤프의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했거든요. 실제 비즈니스 데이터에 기반한 이야기였는데, 브랜드는 구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고객을 전환시켜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전체 카테고리에 정신적·물리적으로 존재감을 만들어서 성장한다는 거였어요.
이렌버그-배스 연구소의 20년간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브랜드 성장의 약 80%는 신규 고객 확보에서 나온다고 해요.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가끔씩이라도 우리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고 마르첼리노 담브로시오와의 대화도 큰 영향을 줬어요. 그는 브랜드 마케팅이 성공한 후에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넬슨처럼 그도 브랜드를 무시하고 성과에만 터널비전을 가지면 규모 확장이 죽는다는 걸 보여줬어요.
마르첼리노는 브랜드 마케팅이 장기 예산 결정을 안내할 수 있다고 했어요. 빠르게 움직이진 않지만, 훨씬 멀리 보는 거죠.
현실 세계가 규칙을 바꿨다
성과 중심 마케팅은 가상의 이론이 아니에요. 실제로 많은 기업을 만들어냈죠.
하지만 그 기업들 중 많은 수가 정체기를 맞았어요. 한때 디지털 퍼스트 효율의 상징이었던 와비파커는 성장을 계속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과 광범위한 브랜드 구축에 투자해야 했어요. 2024년 기준으로 2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합한 브랜드 경험에 집중하고 있죠.
퍼플은 타겟 오디언스가 포화되면서 광고 효과가 떨어지는 걸 경험했어요. 아무리 정교하게 조정된 유사 타겟 오디언스도 결국 신규 구매자가 바닥나더라구요.
그런데 에어비앤비는 놀라운 전환을 했어요. 2022년 성과 마케팅을 과감하게 줄이고 브랜드에 올인한 거예요.
결과는요? 2023년 매출이 전년 대비 18% 증가했고, 순이익은 153% 급증했어요. 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우리는 성과 마케팅 지출을 대폭 줄였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왔다"고 말했죠.
그들은 이미 시장 내 수요를 다 포착했고, 새로운 관심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거예요. 퍼널 하단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죠.
2023년 마케팅 믹스 모델링 연구에 따르면, 브랜드 마케팅은 단기적으론 성과 마케팅보다 ROI가 낮지만, 12개월 이상 장기로 보면 평균 2.5배 더 높은 수익을 가져온다고 해요. IPA의 연구에서도 마케팅 예산의 60%를 브랜드에, 40%를 성과에 배분한 기업들이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밝혔어요.
지금 제가 믿는 것
성과 마케팅을 버린 건 아니에요. 여전히 타겟팅, 측정, 데이터를 믿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아요.
결국 브랜드 마케터들이 처음부터 옳았던 거죠. 다만 그들이 설명을 잘 못했을 뿐이에요.
마케팅은 브랜드 대 성과의 싸움이 아니에요. 둘 다 필요해요.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요.
퍼널 상단은 도달 범위, 스토리, 존재감으로 채우고, 하단에서는 의도에 맞는 전술로 전환시키는 거예요. 브랜드 마케팅이 미래의 수요를 만들어내면, 성과 마케팅이 그 수요를 효율적으로 잡아내는 거죠.
넬슨 엘리엇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건 도달 범위다. 그걸 어떻게 할지는 채널과 유통에 달렸다." 이 원칙은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똑같이 적용돼요.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께
메타나 구글에 돈을 쏟아붓고 전환율이 오르는 걸 보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있어요. 때로는, 한동안은, 그게 실제로 가능하기도 하죠.
거기서 시작하는 신입 마케터를 탓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 "적절한 메시지를,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시간에"라는 이야기를 들어왔으니까요. 측정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거든요. 클릭 한 번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전환됐는지 바로 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성과 마케팅만으로는 전략이 될 수 없어요. 그건 전술일 뿐이에요.
광고 비용이 오르고, 경쟁자가 성숙하고, 소비자 관심이 이동할 때, 전술만으로는 부족해요. 기억이 필요하고, 스토리가 필요하고, 인지도가 필요하고, 차별성이 필요해요. 다시 말해, 진짜 브랜드가 필요한 거죠.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도 이런 변화를 겪고 있어요. 초기에 성과 마케팅으로 빠르게 성장한 기업들이 일정 규모에 도달한 후, 브랜드 투자를 시작하는 걸 자주 보게 되더라구요. 토스, 당근마켓, 마켓컬리 같은 기업들이 대표적이에요.
균형을 찾은 마케터가 되자
최고의 마케터는 채널이나 전술에 충성하지 않아요. 결과에 충성하죠.
그들은 언제 도달 범위를 우선해야 하고, 언제 효율을 최적화해야 하는지 알아요. 숫자를 신뢰하지만,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아요.
브랜드와 성과는 반대편이 아니에요. 둘 다 도구예요.
똑똑하게 사용하세요. 한 가지 재주만 가진 말이 되지 마세요. 고객의 여정 전체를 보고, 단기 전환과 장기 브랜드 자산을 동시에 키워나가는 균형 잡힌 마케터가 되시길 바라요.
결국 제가 배운 건 이거예요. 성과 마케팅은 지금 당장의 수요를 잡아내는 데 탁월하지만, 브랜드 마케팅은 미래의 수요를 만들어내요.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조화롭게 사용하는 게 진짜 마케터의 실력이라는 거죠.
성과와 브랜드, 효율과 성장, 단기와 장기. 이 모든 걸 균형있게 다루는 마케터가 되어보세요. 그게 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드는 비결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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