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기마다 바뀌는 가격표,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예전엔 SaaS 기업이 가격을 바꾸려면 정말 대공사였어요. 외부 컨설턴트한테 수억 원을 주고, 고객 설문조사를 돌리고, 복잡한 재무 모델을 만들고... 그렇게 몇 년에 한 번씩 고작 10% 정도 올리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2025년은 완전히 달랐어요. PricingSaaS에서 주요 SaaS 기업 500곳을 분석한 결과, 올해만 무려 1,800건 이상의 가격 변경이 있었다고 해요. 기업당 평균 3.6번씩 가격표를 바꾼 거예요. 거의 분기마다 가격 정책을 재검토한다는 얘기잖아요?
저도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좀 놀랐어요. 단순히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게 아니라, SaaS 산업 전체가 "어떻게 요금을 받아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씨름하고 있다는 신호거든요. 그리고 그 중심엔 역시 AI가 있죠.
Lovable부터 Salesforce까지, 왜 이렇게 자주 바꾸나?
최근 4개월 만에 연매출 1조 원에서 2조 원으로 성장한 Lovable이라는 회사가 있어요. 그런데 이 회사, 한 달에 한 번꼴로 가격을 바꿨거든요. 3월에 팀 플랜을 출시했다가 6월에 없애고, 8월엔 롤오버 크레딧을 추가하고, 8월과 9월엔 프로·비즈니스 플랜 시작 가격과 크레딧 한도를 또 조정했어요.
이게 허술하게 운영하는 거냐고요? 전혀요. 오히려 반대예요. AI 시대엔 제품이 매달 달라지고, 고객의 사용 패턴이 빠르게 변하니까, 가격도 그에 맞게 계속 진화하는 게 맞다는 철학이에요.
Salesforce 같은 대기업도 다르지 않아요. 올해만 AI 크레딧 출시, 유연한 결제 옵션, 새로운 사용자 라이선스, 에이전틱 ELA(기업 라이선스 계약)를 연달아 내놨어요. 2025년 8월엔 엔터프라이즈·언리미티드 에디션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6% 올리기도 했고요. 이 정도면 가격 정책이 이제 마케팅이나 제품 전략과 동급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는 게 실감나지 않으세요?
크레딧 모델이 대세가 된 이유
올해 가장 뜨거웠던 가격 방식은 단연 크레딧이에요. PricingSaaS 500 인덱스에 따르면, 크레딧 모델을 쓰는 기업이 2024년 말 35개에서 2025년에는 79개로 늘었다고 해요. 무려 126% 증가한 거예요. Figma, HubSpot, Salesforce 같은 대형 기업들도 다 크레딧 모델을 도입했고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요? 간단해요. 크레딧은 고객한테는 예측 가능성을 주고, 기업한테는 사용량에 따른 수익을 보장해줘요. 완전히 쓴 만큼 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고정 요금도 아닌, 딱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거죠.
예를 들어 Lindy는 월 5만 원에 5,000 크레딧을 줘요. 100 크레딧당 1,000원꼴이라 계산하기도 쉽죠. Clay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볼륨 할인을 제공해요. 크레딧을 많이 살수록 단가가 낮아지는 구조예요. AI 기능을 많이 쓰는 파워 유저에게 딱 맞는 방식이죠.
크레딧 하나로 뭘 할 수 있을까? 복잡함 뒤에 숨은 유연성
크레딧이 다 똑같은 건 아니에요. Audible처럼 단순한 곳도 있어요. 크레딧 하나 = 오디오북 하나. 이게 끝이에요.
그런데 Clay에서는 크레딧으로 회사 매출 조회도 하고, 링크드인 스크래핑도 하고, 이메일 인리치먼트도 하는데 각각 소비되는 크레딧 양이 달라요. Lovable도 마찬가지예요. 간단한 디자인 수정은 크레딧이 조금 들지만, 인증 시스템 추가나 랜딩페이지 제작은 훨씬 많이 들어가고요.
기업 입장에선 유연하게 가격을 매길 수 있어서 좋아요. 하지만 고객 입장에선 헷갈리고 귀찮을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크레딧 모델이 넘쳐날수록, 오히려 단순함을 원하는 고객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대요. 2026년엔 그 반동이 올 거라는 전망도 나와요.
AI를 다시 묶는 흐름 — 재번들링이란?
크레딧 못지않게 중요한 흐름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AI 재번들링이에요.
많은 SaaS 기업들이 처음엔 AI를 별도 애드온으로 팔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핵심 플랜에 포함시키고 있죠. 두 가지 방식으로요.
첫 번째는 AI를 기능으로 묶고 가격을 올리는 거예요. Notion은 사용자당 월 8,000원짜리 AI 애드온을 없애고, 비즈니스 플랜 가격을 월 15,000원에서 20,000원으로 올렸어요. Slack도 사용자당 월 10,000원짜리 AI 애드온을 없애고 비즈니스 플랜에 포함시켰고요. AI 기능을 번들로 묶으면서 가격을 올린 경우, 인상폭이 사용자당 약 3,000~7,000원 수준이었다고 해요.
두 번째는 AI 크레딧을 제한적으로 제공하는 거예요. Airtable은 사용자당 월 6,000원짜리 AI 애드온을 없애고, 각 플랜에 크레딧을 기본 제공하면서 소진 시 추가 구매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가격은 동결하면서 소비 기반 수익 모델을 심은 거죠.
재밌는 건 Atlassian이에요. 월 2만 원짜리 Rovo를 무료로 플랜에 포함시키면서, 크레딧 한도를 아직은 강제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90일 전 공지 후 시행할 거라고 명확히 밝혀놨죠. 당장은 무료처럼 보이지만 구조는 이미 다 깔려 있는 셈이에요.
좌석 기반 가격이 죽지 않는 이유
올해 수백 개의 기사가 좌석 기반 가격의 종말을 예고했어요. 그런데 실제 데이터를 보면, 여전히 꽤 건재해요. 오히려 복잡한 크레딧 모델 대신 좌석 방식을 원한다는 고객도 많대요.
Gartner의 소프트웨어 라이선싱 전문가는 "고객들은 AI 가격 모델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접근을 한다"고 말했어요. 예산도 이미 좌석 단위로 짜여 있고, 새로운 모델의 불확실성은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크거든요.
그래서 똑똑한 기업들은 좌석 모델을 버리는 대신, 더 똑똑하게 활용하고 있어요. 좌석이 단순히 로그인 권한이 아니라, 모델 품질·자동화 한도·API 연동 수 같은 역량의 차이로 이어지게 만드는 거죠.
OpenAI가 딱 그 예예요. 좌석을 팔긴 하는데, 각 티어마다 근본적으로 다른 제품을 줘요. 무료 사용자와 프로 사용자가 같은 인터페이스를 쓰지만, 완전히 다른 AI 경험을 받는 거죠. Figma는 협업·개발·풀 좌석으로 나눠서 직무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매기고, Monday.com은 자동화·통합 한도로 티어 간 차별화를 만들었고요.
AI 세금이라 불리는 것들 — 가격 인상의 민낯
한 가지 불편한 사실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최근 기업 실무자들 사이에서 "AI 세금"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요.
실제 갱신 데이터를 분석한 Tropic에 따르면, AI 관련 가격 인상이 20~37%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기존에 일반적이었던 연간 3~9% 인상과 비교하면 엄청난 수치예요. 거기다 할인 폐지, 사용량 한도 강화, 기능 분리 등까지 더하면 구매자가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비용 증가는 20~30% 수준이 된다는 분석도 나왔어요.
더 눈길을 끄는 건 Zylo의 2026 SaaS 관리 인덱스예요. AI 네이티브 SaaS에 대한 지출이 전년 대비 108% 증가한 반면, 전체 SaaS 애플리케이션 수는 오히려 소폭 줄었다고 해요. 앱 수는 줄었는데 비용은 늘었다는 건, 결국 단가가 올라갔다는 뜻이죠. 실제로 조사 대상 기업 중 61%가 "예상치 못한 SaaS 비용 증가로 프로젝트를 취소하거나 축소해야 했다"고 응답했어요.
고객이 직접 고르는 시대 — 선택지가 전략이 됐다
아마 2025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변화는, 고객이 가격 모델을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거예요.
지난 10년간은 기업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요. 장기 계약, 경직된 라이선스, 일방적인 가격 정책이 전부였죠. 그런데 AI는 이 판도를 바꿨어요. AI는 라이선스 모델로도, 순수 소비 모델로도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거든요.
Salesforce의 Agentforce를 보세요. 무려 다섯 가지 옵션을 제공해요. 예측 가능성을 원하면 라이선스 기반, 유연성을 원하면 크레딧, 테스트 중이라면 종량제, 결과에 돈을 낼 준비가 됐다면 대화당 가격, 무제한을 원하면 에이전틱 ELA까지. CEO 마크 베니오프는 "처음엔 대화당 과금 방식이었는데, 고객들이 더 유연한 방식을 요청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어요.
Decagon이라는 곳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아예 결과 기반 가격만 제공하되, 고객이 '해결당 가격'과 '대화당 가격' 중 선택할 수 있게 해요. 명확한 사용 사례가 있는 고객은 해결당을, 복잡한 지원 환경의 고객은 대화당을 선택하면 되는 거죠.
2026년에는 어떻게 달라질까?
AI가 매달 가능성의 경계를 바꾸는 세상에서, 고객들은 옵션을 원해요. 2025년은 크레딧 쪽으로 진자가 흔들렸다면, 2026년에는 단순함과 예측 가능성 쪽으로 다시 돌아올 거라는 전망이 우세해요.
실제로 Gartner는 에이전틱 AI가 2035년까지 기업 애플리케이션 소프트웨어 매출의 30%를 차지할 것이고, 그 규모는 4,500억 달러(약 600조 원)를 넘어설 거라고 전망했어요. 그리고 2030년까지 기업 SaaS 지출의 최소 40%가 사용량·에이전트·결과 기반 가격 모델로 전환될 거라는 예측도 나와 있고요.
한 가지는 분명해요. 완벽한 가격 모델 같은 건 없어요. 크레딧이든, 좌석이든, 결과 기반이든 각 모델마다 한계가 있어요.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의 고유한 스토리를, 내 고객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고객이 어떻게 가치를 얻는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선택하는 거예요.
올해만 1,800건이 넘는 가격 변경이 있었다는 건, SaaS 기업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실험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그 실험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객이 있어야 한다는 걸, 가장 성공적인 기업들이 몸소 증명하고 있죠.
핵심 요약
2025년 SaaS 시장은 1,800건 이상의 가격 변경, 크레딧 모델 126% 급증, AI 재번들링이라는 세 가지 흐름으로 요약됩니다. AI 기능 도입을 계기로 가격이 평균 20~37% 올랐고, 좌석 기반 모델은 진화를 거쳐 여전히 살아있으며, 고객이 직접 가격 구조를 선택하는 '선택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2026년에는 복잡한 크레딧 모델에 대한 피로가 누적되며 단순함과 예측 가능성에 대한 요구가 다시 커질 전망입니다. 어떤 가격 모델이 맞는지는 결국 내 고객이 가치를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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