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케팅 잘하면 서비스도 살아난다"는 착각
요즘 스타트업에서 흔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있어요. "마케팅이 약해서 성장이 안 된다", "브랜딩을 더 강화해야 한다", "광고를 더 써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배달의 민족을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든 장인성 마케터의 이야기는 이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해요. 그는 스테이폴리오 COO로 합류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마케팅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는? 2025년 사용자 50%, 거래액 30% 성장. 2022년 최고 기록을 3년 만에 경신했습니다.
오늘은 이 흥미로운 반전 이야기를 같이 들여다볼게요. 서비스 기획자, 제품 담당자, 마케터, 스타트업 대표 모두에게 뭔가 꽂히는 게 있을 거예요.
배민에서 배운 것: 브랜딩은 서비스의 거울이다
배달의 민족은 참 독특한 브랜드였어요.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같은 슬로건, 치믈리에 자격시험, 배민 신춘문예. 음식 배달 앱이 이렇게까지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곳이었죠.
장인성 님이 배민에 합류한 건 꽤 단순한 이유였어요. 소비자와 서비스의 관계 문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처음 배민의 타겟은 막내였어요. 야근하면서 대표로 배달 주문하는 회사 막내, 자취하면서 혼자 밥 시켜 먹는 막내. 이 막내들이 친구처럼 여길 만한 브랜딩을 했고, 고급 여행권 대신 양말 30켤레나 두루마리 휴지 100개를 선물로 줬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같다"는 즐거움을 준 거죠.
작은 브랜드에서 성장하는 브랜드로, 또 책임을 요구받는 브랜드까지. 한 회사에서 그 모든 걸 경험했는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졌다고 해요. 이미 너무 커진 브랜드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 그래서 나왔습니다.
스테이폴리오는 어떤 서비스인가
스테이폴리오는 파인 스테이 큐레이션 플랫폼이에요. 가격 경쟁 논리가 아닌 디자인, 운영 철학, 지역성을 기반으로 상위 5%의 숙소만 선별해서 소개하는 곳이에요.
2015년 건축가 출신 창업자 이상묵 님이 부모님 서산 식당 건물을 자신의 건축 노하우를 담아 멋진 숙소로 만든 것이 시작이었어요. 일반 예약 플랫폼에 올리기엔 너무 다른 물건이라, 직접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다 지금의 스테이폴리오가 됐죠.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는 전성기를 맞았어요. 해외를 못 나간 사람들이 국내 독채 여행지로 눈을 돌리면서 2022년 MAU 50만 명, 월간 거래액 30억 원에 전년 대비 50% 이상 성장했거든요. 그런데 엔데믹 이후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2023년에는 매출이 약 20% 가까이 빠졌어요.
그 타이밍에 장인성 님이 합류합니다.
마케터가 처음 한 일: 마케팅 안 하기
COO로 합류하면서 스스로에게 한 가지 결심을 했어요. 마케터가 되지 말자.
왜냐고요? 스테이폴리오의 문제가 브랜딩이나 마케팅의 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서비스 자체가 사용자 입장에서 쓰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었어요. 제작자 시선, 즉 만드는 사람의 눈으로만 만들어진 서비스였던 거예요.
앱 이름이 영문으로 'STY FLIO'라고만 써있고, 메뉴 이름은 그냥 '메뉴'라고 적혀 있고, 숙소 사진이 가로로 되어 있는 것. 하나하나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게 쌓이면 서비스 전체가 사용자에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거든요.
특히 사진 문제는 치명적이었어요. 스마트폰에서 가로 사진은 세로 사진의 절반 이하로 작아지거든요. 그 말은 숙소의 매력을 절반도 못 보여준다는 뜻이에요. 숙소 예약 서비스에서 사진이 작다는 건 심각한 문제죠.
그래서 한 일이 뭐냐고요? 메뉴를 한글로 바꾸고, 사진을 세로형·정사각형으로 바꿨어요. 기술적으로는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근데 이게 실은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바꾸는 일이었어요.
사용자 흐름을 다시 설계하다
또 하나의 핵심 변화가 있었어요. 예약 흐름의 재설계예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가 SNS에서 숙소 광고를 봤을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어요. "강원도 독채, 뷰 맛집" 광고를 보고 눌렀어요. 멋있어요. 바로 결제할 수 있나요? 아니에요. 일정도 정해야 하고, 같이 갈 사람과 합의도 해야 하고, 비행기나 기차도 예약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이 순간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결제가 아니라 북마크예요.
그런데 기존 스테이폴리오는 결제까지 바로 유도하는 흐름으로만 설계돼 있었어요. 북마크를 쉽게 하도록 설계하고, 북마크한 사람들을 나중에 다시 결제로 유도하는 2단계 전략이 필요했던 거죠.
사용자가 어딘지 모르게 편해졌는데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 이 보이지 않는 변화들이 쌓여서 서비스의 매력 자체를 바꾸게 됐어요.
이처럼 서비스 개선은 거창한 것이 아니에요.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따라가다 보면, 고쳐야 할 것들이 보이게 되더라고요. 국내 UX 업계에서도 사용자 관점으로 본다는 게 엄청난 게 아닌데도 엄청난 것으로 개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실패가 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 사례가 딱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사람 불러모을 준비가 됐을 때 비로소 마케팅
서비스가 정돈됐다고 판단한 2025년 4월, 드디어 사람들을 불러모을 때가 됐어요.
그때 흥미로운 관찰을 했어요. 스테이폴리오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이었어요. 아는 사람들의 특징?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에요. 작가, 디자이너, 건축가, 창업자. 감각 있고 자기 분야에서 제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스테이폴리오를 알고 잘 쓰고 있었어요.
이게 불안한 서비스가 아니라 아는 사람은 아는 서비스라는 신호였어요.
그래서 기획한 것이 베스트 스테이 50 캠페인이에요. 스테이폴리오를 좋아하는 감각 있는 50명이 각자 최고의 스테이 하나씩을 소개하는 방식이었어요. 인스타그램으로 바이럴이 시작됐고, 팀 구성원들이 친구들한테 너네 뭐 하더라 연락을 받기 시작했어요. 방문자는 약 1.5배 늘었고, 결제도 함께 올라갔어요.
이게 진짜 마케팅이에요. 서비스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광고를 때리는 게 아니라, 준비된 서비스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알리는 것.
성장이 만든 진짜 변화
사용자 50% 성장, 거래액 30% 성장. 의미 있는 숫자예요. 근데 이번 성장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건 숫자가 아니었다고 해요.
이전에는 구성원들이 꼭 해야 되는 일만 최소한의 에너지로 해내는 분위기였대요. 지금은 달라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크게 보고, 그걸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고민하고 제안하고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다고요.
성장이 조직을 바꾼다는 걸, 역설적으로 역성장 후 반등을 통해 훨씬 선명하게 경험한 거예요. 숫자 지표가 팀의 에너지를 바꾸고, 팀의 에너지가 다시 더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선순환. 이게 스타트업이 진짜 성장하는 방식이에요.
제작자 뷰와 소비자 뷰의 180도 차이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져가야 할 핵심은 이거예요.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과 서비스를 쓰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봐요. 만드는 사람은 내부 구조, 기능의 완성도, 기술적 구현에 집중하는 반면, 쓰는 사람은 그냥 편한지, 잘 보이는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지만 관심이 있어요.
이 두 시선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서비스 기획의 핵심이에요. 근데 막상 서비스를 만들다 보면, 이게 당연히 알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계속 찾아와요. 그 순간이 사실 가장 위험한 순간이에요. 만드는 사람에게 당연한 것이 쓰는 사람에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 훨씬 많으니까요.
스테이폴리오 사례에서 영문 약자 앱 이름, 가로 사진, 영어 메뉴 이런 것들이 바로 그거였어요. 팀 내부에서는 너무 익숙해서 문제가 안 보였지만, 외부인 눈에는 즉시 보였던 것들이죠.
사람을 부르기 전에 서비스를 먼저 고쳐야 한다는 순서감
이 이야기에서 하나 더 가져가고 싶은 건 순서예요.
많은 스타트업이 마케팅을 서비스 개선보다 먼저 하려고 해요. 일단 사람을 모아놓고 그 다음에 서비스를 고치면 된다는 생각이죠. 근데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경험이 별로인 서비스로 첫인상이 형성되고, 한 번 떠난 사람은 잘 안 돌아와요.
스테이폴리오는 반대로 했어요. 마케팅을 멈추고, 서비스를 먼저 고쳤어요. 서비스가 준비됐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방식으로 사람들을 불렀어요. 그리고 결과는 2022년 최고 기록 경신이었습니다.
브랜딩보다 브랜딩다운 일이란 바로 이런 거예요. 화려한 캠페인이 아니라, 사용자가 서비스를 쓰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그 경험 자체를 바꾸는 것.
마무리
스테이폴리오의 반등은 화려한 캠페인 하나가 만든 게 아니에요.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다시 보는 시선의 전환, 사람들을 부를 준비가 됐을 때 제대로 된 메시지를 보내는 타이밍, 그리고 서비스에 진심인 팀의 에너지가 쌓인 결과예요.
서비스 기획을 하다 보면 늘 이런 순간이 와요. 마케팅을 먼저 해야 하나, 서비스를 먼저 고쳐야 하나. 이 이야기는 그 고민에 꽤 분명한 힌트를 줘요. 사용자 경험은 마케팅 예산으로 살 수 없어요. 오직 사용자의 시선으로 서비스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해요.
지금 여러분의 서비스는 만드는 사람 눈으로 만들어져 있나요, 쓰는 사람 눈으로 만들어져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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