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내 글인가, AI 글인가" 물음표가 떠올랐다면
얼마 전 해외 커뮤니티 LessWrong에 흥미로운 글 하나가 올라왔어요. 영어를 네 번째 언어로 배운 한 블로거의 솔직한 고백이었는데,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에요.
"2023년 이전까지는 글을 한 번도 다시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썼어요. 그런데 지금은 1,000단어짜리 글 하나도 AI 없이 못 씁니다."
이게 단순히 외국인 이야기처럼 들리세요? 저는 읽으면서 뭔가 찔렸어요. AI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비슷한 감각을 느껴봤을 것 같거든요. 오늘은 그 불편한 감각에 대해 제대로 한번 얘기해보려 해요.
AI 글쓰기 도구가 좋은 건 맞아요.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AI 글쓰기 도구를 처음 쓸 때를 떠올려보세요. 처음에는 문법 교정 정도만 맡겼죠. Grammarly나 맞춤법 검사기처럼요. 그 다음엔 문장 구조를 다듬는 데 썼고, 어느 순간엔 초안 자체를 AI한테 부탁하고 있었어요.
이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게 문제예요.
처음엔 내가 쓴 글을 AI가 다듬는 구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AI가 쓴 글을 내가 골라주는 구조가 됐어요. 생산자에서 선택자로 슬그머니 역할이 바뀐 거죠. 그리고 그 변화를 우리 대부분은 눈치채지 못했어요.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한다. 이건 진짜입니다
이 부분에서 전문가들도 경고를 합니다. 글쓰기를 AI에 맡기면 스스로 쓰는 능력이 서서히 후퇴할 수 있다는 건 단순한 우려가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글쓰기는 단순히 텍스트를 만드는 행위가 아니에요. 글을 쓰다 보면 내 생각의 오류를 발견하고, 고치는 과정에서 사고가 명확해집니다. 논리가 정리되고, 감정이 정돈되고, 주장이 날카로워지는 거예요. 그 과정 전체를 AI가 대신해버리면 남는 게 뭐냐는 질문이 생기는 거죠.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신어(Newspeak) 개념과도 연결돼요. 전체주의 정부가 언어를 단순화할수록 복잡한 사고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이야기인데, AI가 언어 표현의 역할을 대신하면 사고의 다양성도 함께 축소될 수 있다는 거예요. 섬뜩하지 않나요?
"어차피 프롬프트는 내가 썼잖아" 이 합리화, 사실은 함정이에요
AI 글쓰기에 대해 가장 많이 하는 합리화가 있어요.
프롬프트는 내가 썼으니까 이건 내 글이다. AI가 초안 잡고 내가 편집했으니 내 창작물이다. 도구를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근데 경계가 점점 흐려진다는 게 문제예요. 처음엔 문법 교정만 맡기다가, 문장 구조를, 그다음엔 아이디어 자체를 AI에 물어보게 돼요. LessWrong 블로거도 처음엔 교정 도구만 썼는데, ChatGPT가 등장한 이후 이메일 하나도 AI 검토를 받게 됐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2년 뒤 자신이 스스로 글 쓰는 능력 자체가 무뎌졌다고 고백했어요.
도구를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도구 없이는 못 쓰게 되는 게 문제인 거예요.
자소서까지 AI가 쓰는 시대, 숫자가 증명합니다
이게 단순히 블로그나 취미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실제 채용 전형에 제출된 자기소개서의 69%가 AI를 활용해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어요. 불과 1년 반 전인 2023년 하반기에는 7%에 불과했는데, 그 사이 9배 이상 폭증한 거예요.
Z세대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는 91%가 AI로 자소서를 작성해봤다고 답했어요. 이미 10명 중 9명이 AI를 활용하는 상황이에요. 기업들도 이걸 감지하고 있어서, AI 판별 프로그램을 도입하거나 자소서 전형 자체를 폐지하고 면접과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전환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어요.
글쓰기 능력이 채용 시장에서도 다르게 평가받게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AI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여기서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AI 글쓰기 도구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료 조사, 초안 구조 잡기, 문법 교정, 논문 요약 같은 데서 AI는 정말 탁월해요. 생산성이 올라가는 건 사실이고요.
핵심은 어디서 AI를 쓰느냐예요.
AI가 효율을 올려주는 구간이 있고, AI가 내 사고 자체를 대신해버리는 구간이 있어요. 전자는 좋은 활용이고, 후자는 서서히 내 능력을 갉아먹는 의존이에요. 사진 기술이 발달해도 화가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듯, AI가 발전해도 인간 글쓰기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아요. 문제는 그 가치를 우리 스스로 지켜내느냐예요.
AI가 쓴 문장은 유창할 수 있어요. 근데 그 문장에는 새벽에 고민하며 적은 흔적이 없어요. 독자는 그 차이를 느낍니다.
앞으로 글쓰기는 어떻게 재정의될까요
전문가들은 이제 'AI를 쓰느냐 아니냐'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해요.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썼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2024년 USC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이 프로 작가 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어요. AI와 협업하더라도 작가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와 진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거예요. 도구가 아무리 발전해도 '내 목소리'를 지키려는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미래의 글쓰기는 이렇게 재정의될 것 같아요. AI와 협업하되, 내 생각이 출발점이어야 한다. 초안은 AI가 도울 수 있어도, 문제의식과 통찰은 내가 가져야 한다. 독자에게 닿는 감정, 직접 겪은 경험, 날 것의 관점은 어떤 AI도 흉내 낼 수 없다.
마무리 - 당신의 글에는 아직 당신이 있나요
LessWrong의 블로거는 AI 없이 직접 쓴 글을 커뮤니티에 올렸고, 무사히 통과됐어요. 그 순간 그는 이렇게 썼대요.
"내 글쓰기에 AI 검증을 왜 받으려 했던 걸까?"
이 질문이 참 묵직하게 남아요. 도구가 발전할수록, 도구에 의존하지 않을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져요. 글쓰기는 사고의 근육이에요. AI 시대일수록, 그 근육을 직접 써야 해요.
지금 당장 AI 없이 짧은 글 하나 써보세요. 막히는 순간, 그게 바로 당신이 돌봐야 할 근육이 어딘지 알려주는 신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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