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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스타트업

빠르게 달리는데 왜 앞으로 안 나가지? 스타트업이 놓친 '벨로시티'의 비밀 🚀

by DrKo83 202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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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는데 왜 복리가 안 쌓이지?"

분기마다 기능을 쏟아냅니다. 팀은 야근을 밥먹듯 하고, 배포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반년 전과 지금의 시장 위치가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저도 이 감각을 알아요.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는데, 뭔가를 쌓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는 그 묘한 공허함이요.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열심히 뛰는데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

이게 바로 속도(Speed)만 있고 방향이 없는 상태입니다. 오늘은 이 차이를 정확히 짚어주는 개념 하나와, 실무에 바로 쓸 수 있는 프레임워크 세 개를 같이 정리해 보려고 해요.

속도와 벨로시티, 뭐가 다를까요?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잠깐 나왔던 개념인데요. 속도(Speed)는 빠르기만 말합니다. 벨로시티(Velocity)는 방향까지 포함한 개념이에요.

스타트업에 대입하면 이렇게 됩니다.

한 분기에 기능을 50개 출시하는 팀은 속도가 빠른 팀입니다. 그런데 시장 포지션을 강화하고, 고객 이탈을 낮추고, 경쟁사가 따라오기 어렵게 만드는 기능 10개를 출시하는 팀이 벨로시티가 높은 팀이에요.

수치만 보면 전자가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년 후에 살아남는 쪽은 대부분 후자예요. 매 분기 복리가 쌓이는 구조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줄 요약: 기능을 많이 쌓는 팀이 아니라, 쌓을수록 유리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팀이 이깁니다.

방향 없이 달리다 무너진 위워크 이야기

방향 없는 속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어요. 한때 기업가치 약 47조 원을 기록했던 위워크(WeWork)입니다.

100개 도시에 사무실을 열었고, 수조 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팀은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어요. 그런데 위워크는 한 가지 핵심 질문에 끝내 답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사업을 하고 있는가?"

부동산 임대업인지, 구독형 반복 수익 비즈니스인지, 커뮤니티 플랫폼인지 아무도 명확히 몰랐어요. 브랜드는 화려했지만, 그 아래 사업 구조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속도는 엄청났는데, 방향이 없었던 거죠.

2025년 기준으로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봐도 비슷한 그림이 보입니다. 창업자의 64.8%, 투자자의 58.9%가 최근 분위기가 악화됐다고 평가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매출 같은 실질적인 성과 없이는 투자를 받기도 어려워졌어요.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어디로 달릴지를 먼저 정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Playing to Win: 방향을 정하는 5가지 질문

그러면 방향은 어떻게 정할까요? 경영 전략서 'Playing to Win'에서 나오는 5가지 질문이 정말 쓸모 있어요.

첫째, 우리의 이기는 열망은 무엇인가? 둘째, 어디서 플레이할 것인가? 셋째, 어떻게 이길 것인가? 넷째,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다섯째, 어떤 운영 시스템이 필요한가?

이 다섯 가지가 강력한 이유는 앞 선택이 다음 선택을 제한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1인 프리랜서용 CRM"으로 어디서 플레이할지를 정하면, 어떻게 이길지는 자동으로 좁혀집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UI, 자동 팔로업 기능, 한 사람을 위한 설계가 됩니다. 반대로 대기업용 대시보드나 팀 권한 관리 기능은 자동으로 배제되고요.

저는 이 프레임이 제일 좋은 이유가,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명확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능 요청이 올 때마다 "우리는 어디서 플레이하는 팀이지?"를 떠올리면 판단이 훨씬 빨라집니다.

한 줄 요약: 전략의 핵심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7가지 파워: 달릴수록 유리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법

방향을 정했다고 끝이 아니에요. 그 방향으로 달렸을 때 달릴수록 지키기 쉬워지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해밀턴 헬머의 '7가지 파워(7 Powers)'가 이걸 설명해요.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역방향 포지셔닝, 전환 비용, 브랜딩, 독점 자원, 프로세스 파워. 이 일곱 가지입니다.

핵심은 이 파워들이 특정 시간대에만 쌓을 수 있다는 거예요. 네트워크 효과는 생태계가 아직 형성 중일 때 쌓아야 합니다. 역방향 포지셔닝은 기존 강자가 자기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기 어려운 동안에만 유효해요. 창이 열려 있을 때 들어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쇼피파이(Shopify)가 딱 이 구조를 만들었어요. 소상공인 셀러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개발자가 앱을 만들었고, 더 많은 앱이 생길수록 더 많은 셀러가 쇼피파이를 선택했어요. 네트워크 효과와 전환 비용을 동시에 쌓은 겁니다. 지금 쇼피파이를 깨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반면 2015년에서 2020년 사이 페이스북 광고로 폭발 성장했던 직접 구매(D2C) 브랜드들은 어땠을까요? 매출은 인상적이었지만, 네트워크 효과도, 전환 비용도, 역방향 포지셔닝도 없었습니다. 광고비가 오르고 경쟁이 몰리자 매 분기 처음부터 다시 싸워야 했어요. 매출은 있었지만 파워가 없었던 거죠.

한 줄 요약: 지금 달리는 방향이 어떤 파워를 쌓고 있는지 모른다면, 경쟁자 한 명이 등장하는 순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JTBD: 고객이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라

방향도 있고, 파워도 쌓고 있는데 성장이 멈추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 대부분 "고객이 원하는 일"을 잘못 정의한 게 원인입니다.

JTBD(Jobs to Be Done)는 하버드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가 정리한 개념이에요. 핵심을 한 줄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고객은 제품을 구매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해결하기 위해 제품을 고용한다."

유명한 밀크셰이크 사례가 있어요. 한 패스트푸드 체인이 밀크셰이크 매출을 올리려고 더 맛있는 맛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고객을 관찰해 보니 아침 출근길에 밀크셰이크를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들이 밀크셰이크를 "고용한" 이유는 맛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출근길을 덜 지루하게, 점심까지 배를 채우고 싶어서였어요. 결국 더 걸쭉하고 천천히 마실 수 있게 바꾸자 매출이 올랐습니다.

슬랙도 마찬가지예요. 표면적으로는 "팀 메시지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슬랙이 해결한 진짜 일은 달랐어요. "빠르게 움직이는 팀에서 중요한 것들이 묻히지 않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메일은 기다릴 수 있다는 가정 위에 만들어졌어요. 슬랙은 어떤 것들은 기다릴 수 없다는 가정 위에 만들어졌습니다. 팀이 한번 슬랙을 쓰기 시작하면 돌아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스타트업이 JTBD를 놓치는 순간, 기능 요청은 많아지는데 성장은 멈추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목소리 큰 사용자의 요구, 경쟁사 기능 따라 하기, 참여 지표 최적화. 이런 것들이 JTBD를 밀어냅니다.

한 줄 요약: 사람들이 실제로 해결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무리 많은 기능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습니다.

세 가지 프레임워크를 겹쳐보면 지도가 생긴다

이 세 가지를 개별로 써도 좋지만, 진짜 통찰은 셋을 겹쳤을 때 나와요.

"1인 창업자용 CRM"을 만든다고 가정해 볼게요.

Playing to Win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타깃은 1인 창업자, 이기는 방법은 극단적 단순함이에요. JTBD를 파고들면, 고객이 진짜 원하는 일은 "연락처 관리"가 아닙니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팔로업을 놓쳐서 거래를 날리지 않는 것"이에요.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 이메일 자동 연동, 오늘 연락해야 할 사람 알림, 관계가 식어가는 신호 감지 같은 기능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그다음 7가지 파워 중 무엇을 쌓고 있는지 물어야 해요. 1인 창업자의 판매 패턴 데이터가 쌓일수록 어떤 팔로업이 실제로 거래를 살리는지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독점 자원이 돼요.

다만 이 긴장 구조도 봐야 해요. 1인 창업자 시장은 네트워크 효과가 생기기 어렵고, 진입 장벽도 낮아요. 대형 CRM이 "심플 모드" 하나를 추가하면 하루 만에 잠식당할 수 있어요. 이 취약점이 보이면 데이터 복리 구조를 더 공고히 하거나, 전환 비용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략을 보강해야 합니다.

하나의 프레임워크는 현미경이에요. 그런데 셋을 겹치면 지도가 됩니다.

AI 시대일수록 방향이 더 중요해진 이유

AI가 아이디어와 실행 사이의 간격을 급격히 줄이고 있어요. 예전에는 기술이 장벽이었습니다. 이제는 방향이 장벽입니다.

누구나 빠르게 만들 수 있게 된 세상에서, 무엇을 만들지보다 왜 만드는지가 훨씬 중요해졌어요. 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국내 고속성장 스타트업 50개 기업 가운데 주목받는 AI 스타트업들의 공통점도 이겁니다. 차별적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시장과 고객의 JTBD에 집중했다는 것이에요.

뤼튼이 AI 서비스 시작 약 2년 만에 월간활성사용자(MAU) 500만 명을 돌파하고, 토스보다 두 배 빠른 속도를 낸 것도, 기능이 많아서가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결하려 하는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 방향으로 달렸기 때문입니다.

방향 없는 속도는, AI 시대에는 오히려 더 빠르게 잘못된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도구가 강해질수록 방향의 중요성은 커지는 거예요.

마무리

오늘 정리한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속도는 필요합니다. 느린 팀은 시장에서 자리를 잃어요. 그런데 속도에 방향이 더해져야 복리가 생겨요. Playing to Win으로 어디서 어떻게 이길지를 정하고, JTBD로 고객이 진짜 원하는 일을 파악하고, 7가지 파워로 지금 달리는 방향이 무엇을 쌓고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이 세 가지가 겹치는 지점에 진짜 전략이 있습니다.

저장하고 싶은 문장 세 개를 남겨볼게요.

"기능을 많이 쌓는 팀이 아니라, 쌓을수록 유리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팀이 이깁니다."

"전략의 핵심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AI 시대일수록, 방향 없는 속도는 더 빠르게 잘못된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이번 주 한 시간만 내서 지금 만드는 제품 또는 사업에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세요. 어디가 튼튼하고 어디가 흔들리는지, 생각보다 선명하게 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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