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 아니면 이미 사업을 운영 중이신 분들도 마음 한켠에 비슷한 그림 하나씩은 갖고 계실 거예요.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고, 투자자 앞에서 피칭을 하고, 시드 투자를 받고, 빠르게 성장해서 결국 IPO나 M&A로 엑시트하는 그림이요. 이게 오랫동안 "창업 성공"의 정석처럼 여겨져 왔잖아요.
그런데 최근 해외 비즈니스 커뮤니티에서 이 공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더라구요. 미국의 비즈니스 사고 플랫폼 Commoncog의 에디터 세드릭 친, 그리고 벤처 투자자 찰리 오도넬이 각자 다른 글을 통해 비슷한 메시지를 던졌는데, 저도 처음 읽었을 때 꽤 뜨끔했습니다. B2B SaaS 플랫폼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남 얘기 같지가 않더라고요.
창업 성공 공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증거,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 아시죠. 미국의 프리미엄 아웃도어 의류 회사인데, 2024년 기준 연 매출이 약 2조 원(14억 7천만 달러) 규모예요. 창업자 이본 쉬나드는 원래 암벽 등반가였고, 등반 장비를 직접 만들다가 의류 사업으로 넘어간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이 회사의 성장 방식이 진짜 독특한데요. 1991년 경기 침체 때 일부러 고성장을 포기하고, "고객이 허용하는 만큼만 성장한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어떤 해엔 5%만 성장하고, 오히려 불황기엔 25% 성장하는 식이었죠. 쉬나드는 매년 몇 달씩 등산과 자연 탐험을 다니면서도 회사는 독자적으로 잘 굴러갔습니다.
2022년에는 회사 전체를 환경 보호 비영리 재단에 넘겨버렸어요. 지금 파타고니아 수익의 98%는 기후 변화 대응에 쓰입니다. "투자받고 고속 성장하고 엑시트"라는 공식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죠.
워런 버핏도 비슷해요. 망해가던 방직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뒤, 그 현금으로 우량 주식과 기업들을 사들여서 지금의 버크셔를 만들었잖아요. 창업자 특유의 열정이나 VC 투자 없이, 그냥 자산을 재배치하는 방식으로요. 버핏이 30대 후반에 남긴 말이 인상 깊은데요, "나는 100%의 노력을 요구하는 목표보다, 상당한 비경제적 활동을 허용하는 목표를 갖고 싶다"고 했대요. 이미 충분히 부유했던 그는 이익 극대화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사업하는 쪽을 택한 거예요.
VC 스타트업만이 정답이라는 고정관념, 위험할 수 있어요
한국 창업 생태계에서는 "시드 투자 유치", "시리즈 A 완료"가 마치 성공의 훈장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있죠. 투자받은 날이 곧 창업의 성공처럼 느껴지는 문화, 저도 많이 느낍니다.
근데 통계를 보면 얘기가 달라요. 스타트업 컨설팅 기관 스타트업 지놈 보고서에 따르면 스타트업 12개 중 11개는 실패한다고 해요. 투자를 받았다고 예외는 아니고요, 하버드 경영대학원 연구에서는 VC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4개 중 3개가 투자 원금조차 회수 못 한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상황도 녹록지 않아요. e-나라지표 자료를 보면 <cite index="2-1">2023년 연간 창업기업 수는 123만 8,617개로, 전년 대비 6.0% 감소했다고 해요.</cite> 특히 부동산업 창업이 큰 폭으로 줄어든 영향이 컸고, 30세 미만 청년 창업도 눈에 띄게 위축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26년 들어 정부가 창업 지원 예산을 역대급으로 늘리며 반등을 노리고 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창업에 나선 분들이 잘못된 성공 공식을 좇다가 더 깊은 함정에 빠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저도 B2B SaaS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비슷한 장면을 자주 목격해요. "투자 받아야 진짜 스타트업"이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매출과 고객 확보에 써야 할 에너지가 IR 자료 준비에 분산되는 경우요. 투자 유치는 성공의 증거가 아니라, 성공을 향한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죠.
창업자가 잘못된 산을 오르는 이유, ZeroHash 사례
찰리 오도넬의 글에 나온 사례 하나가 진짜 인상적이었어요. 에드워드 우드포드라는 창업자가 대안 상품 파생 거래소를 만들려고 했는데, 정부 규제 허가를 받는 게 핵심이라고 판단했대요. 2년을 쏟아 결국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대요. 허가는 그냥 "입장 티켓"이었을 뿐이고, 진짜 사업을 만드는 문제는 시작조차 안 했다는 걸요. 규제 통과를 충분 조건이라 착각했던 거죠. 사실은 필요 조건이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에요.
에드워드는 이걸 나중에 "산의 순서 문제"라고 이름 붙였어요. 눈앞의 산, 즉 자기가 잘 아는 문제에만 몰두하다 보니 그 뒤에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그가 두 번째로 창업한 ZeroHash는 이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까다로운 규제 문제를 해결할 테니, 나머지 비즈니스는 당신이 직접 풀어라"는 명확한 역할 분담 모델로 성공했다고 해요.
디자이너 창업자의 함정, 잘하는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다
또 다른 사례도 있어요. 25년 경력의 제품 디자이너가 주방 용품을 창업했는데, 2년 반 동안 해외를 오가며 제조 문제를 해결하고 특허도 냈습니다. 제품 완성도는 탁월했고 투자 자료도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자료 어디에도 "어떻게 고객에게 닿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없었대요. 마케팅 예산 항목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 돈을 쓸 사람도 검증된 방법도 없었던 거죠. 이 창업자가 오른 산은 "아름다운 제품 만들기"였는데, 정작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산은 "고객을 어떻게 모을 것인가"였던 거예요.
한국에서도 이런 상황 흔하잖아요. 기술자 출신 창업자는 제품 개발에, 영업 전문가 출신은 고객 발굴에, 콘텐츠 마케터 출신은 브랜딩에 집중하고, 정작 비즈니스에 필요한 나머지 산은 "나중에 사람 뽑으면 되지"라고 미루는 경우요. 창업자가 잘하는 문제와 비즈니스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다를 수 있어요. 이 차이를 빨리 알아챌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올라간다고 봅니다.
두 번째 산을 미리 오르기 시작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유
해결책은 단순한데 실행이 어려워요. 두 번째 산을 미리 오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린이 교육 앱 회사 TinyBop은 제품을 만들기 전에 대학원생을 고용해서 아이들을 위한 뉴스레터부터 운영했어요. 제품도 없는데 1만 5천 명의 구독자를 먼저 모았죠. 제품이 출시됐을 때 이미 앱스토어 상위에 올랐대요. 청중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또 다른 창업자는 고품질 가발 제작 시간을 95% 단축하는 기계를 만들면서, 개발 기간 동안 이메일 리스트 5만 명을 동시에 쌓았어요. 제품 완성 날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죠.
이 개념을 B2B 비즈니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제품을 개발하는 동안 핵심 고객사 10곳과 먼저 관계를 맺고, 그들의 문제를 함께 탐색하고, 출시할 때 이미 파일럿 고객을 확보해두는 방식이요. "제품이 완성되면 영업하겠다"가 아니라, 영업과 제품 개발을 동시에 진행하는 거예요. 첫 번째 산을 다 오르기 전에 두 번째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것, 이게 빠른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맞는 비즈니스 구조를 찾는 세 가지 질문
두 글에서 공통으로 강조하는 건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먼저 정의하라"입니다.
고속 성장과 엑시트가 목표라면 VC 스타트업 구조가 맞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원한다면 파타고니아처럼 느린 성장을 선택할 수도 있고요. 여러 사업으로 복합적인 자산을 쌓고 싶다면 버핏처럼 다양한 사업을 보유하는 방식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이 세 가지를 솔직하게 물어보세요.
첫째, 나는 지금 어떤 산을 오르고 있는가. 내가 잘하는 산인가, 아니면 비즈니스가 요구하는 산인가.
둘째, 나의 비즈니스 구조는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과 일치하는가. VC 성공 공식을 그냥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건 아닌가.
셋째, 두 번째 산은 언제 오르기 시작할 것인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가능한가.
마무리
성공하는 비즈니스 구조는 다양합니다. VC 투자, 고속 성장, 엑시트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창업자는 자신이 잘 아는 산만 오르다가 비즈니스에 진짜 필요한 산을 놓치기 쉽고, 두 번째 산을 미리 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성공의 속도를 결정합니다.
오늘 딱 한 가지만 해보세요. 지금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문제가 비즈니스의 성패를 가르는 문제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그 질문 하나가 지금 오르는 산이 맞는 산인지를 알려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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